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신 하나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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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07-01-02 22:34 조회3,46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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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신 하나님 마9:9-13 예수님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천국의 법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5장으로 시작되는 산상 설교라는 것입니다.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핍박받고 악한 말을 듣는 사람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마 5:12이런 말씀들을 진주 보석만큼이라도 귀히 여기고 붙들고 사는 믿음이 있기를바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너무 멀리서 가물거리는 듯합니다.하나님의 법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그것을 누그러뜨리거나 완화시킬 생각이 전혀 없으십니다. 오히려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는 숨이 막힐지경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거나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것은 날마다일상적인 대화처럼 되어 있습니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끼리끼리 사랑하는 것은 누가 못하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서로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라고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더 악한 일.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지 마라, 누군가가 달라고 할 때 거절하지 말라.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42너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은 너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라. 그 정도가 아니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먼저 남을 대접하라 - 마 7:12자기 눈에 대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티를 빼라는 식으로 다른 사람 비판하지 마라살인해야만 살인이 아니라 미워하고 욕하고 무시하는 마음이 이미 살인한 것이다.형제를 보고 화를 내고 혈기부리면 형제를 살인 한 것과 무엇이 다르냐?남의 여자보고 나쁜 생각 품으면 벌써 간음한 것이다. 눈이 범죄하면 눈을 빼 버리라. 손이 범죄하면 손을 찍어 버리라.남의 것보고 욕심부리는 것은 벌써 도적질 한 것이다.구제나 기도하면서 혹은 예배드리면서 위선과 가식 허세부리는 것은 거짓이다오른 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해라. 기도할 때 중언부언 하지마라.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떠들지 마라. 경건한 척하지 마라.어떤 식으로든 맹세하지 마라. 지키도 못할 것. 거짓말이 된다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마 5:20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인간의 욕심과 교만, 허세와 시기질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이 세상에서 온전하고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이 세상에서 자기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이 세상에서 인간의 폭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이 세상에서 음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이 세상에서 거짓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우리에게 하나님처럼 온전하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처럼!또 한 가지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이라는 것.「너희 아버지」
세상에서 사람의 아들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같이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 불가능한 이상을 어떻게 응답하고 살아야 합니까?아예 무시하고 개같이 살수도 없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버릴 수도 없고...그렇다고 그것을 온전히 다 이룰 수도 없고.....그래서 우리 범인들은 그저 적당히 상식과 중용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처음대하는 10대청소년들에게 반응을 물었습니다.①. 『 나는 종교란 아주 터무니 없는 속임수라고 생각한다.②.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읽은 것을 다 믿지 말라. 예수님 말씀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③. 나는 산상수훈 같은 글을 싫어한다. 산상수훈을 읽는 다는 것은 고역이다 그것은 나에게 완벽함을 강요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④. 이것은 억지다. 여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니 내가 지금까지 들어온 말 중에 가장 극단적이고 불합리하며 비인간적이다.
남의 나라 지배를 받는 식민지 국가 유대나라에서 로마의 폭력과 잔인함에 사지가 벌벌 떨리는 사람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강도와 살인자들에게까지도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하라고. 젊은 아들과 남편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갈릴리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황당하고 가혹하고 거부감이 생겼을 지를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조금도 주저없이 땅의 법이 아니라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늘의 법 하나님의 법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품어야 할 영원한 법을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끝나셨다면 우리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먼저 예수님께서 이 천국의 윤리 하나님의 법을 말씀하신 이유입니다.이 하늘의 법 앞에서는 인간의 모든 가면이 다 벗겨집니다.인간의 어떤 윤리 도덕도 어떤 율법이나 계명이나 계율도 사실 아무 도움이 못됩니다 어떤 도덕 군자도 어떤 성인이나 도통한 사람도 아무리 살아 있는 부처라고 해도 그 말이 빈 깡통에 불과한 것이요 우리들끼리 말 잔치에 불과한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우리들끼리 아무리 훌륭하고 높은 계급장이나 벼슬의 이름을 주어서 황제니 왕이니 백작이나 정승이나 대감이나 세계적인 석학이니 지성인이니별소리를 다 해도 사람의 실체가 눈꼽만큼이라도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을 죄인입니다사람이 아무리 신비하고 거룩한 척해도 결코 거룩하지 않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 일입니다. 자기의 전 재산을 다 사회에 헌납한 재벌 회장도 어떤 자선 사업가도어떤 이상주의자도 온갖 아름답고 심오한 천사의 말을 다 하고 다녀도,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한다고 해도 어떤 종교인도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불쌍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 『형이 확정된 사형수』란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인간의 어떤 문명이나 문화도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인간의 죄를 극복할 수가 없고 죽음을 넘어 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종교적인 속임수로도 가능하지 않습니다하나님의 법 앞에서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한지를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절망적인 존재들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사람이 자기 입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말이 있습니다.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 눅 18:13온갖 거드름을 다 피우면서 혹은 거룩한 척하면 자기 의에 빠져있는 종교인들에게는예수님은 가차없이 혹독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이 회칠한 무덤 같은 인간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느냐?그러나 죄인들이 자기 죄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할 때는 저들이 살인자이었든 강도이었든 창기나 문둥이나 세리이었든 상관없이 묻지 않고 저들을 안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사람의 말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말하는 네 번째 설교입니다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하나님」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죄의 종노릇하면서 죄를 당연하게 죄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데까지 이른 죄인들인 것을 아십니다. 사람이 다 그런 것이지. 그 당연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우리는 이것은 아닌데 하고 속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본래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인간의 진정한 비젼과 꿈과 목표와 이상을 인간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예수님은 자원하여 죄인들의 대표가 되셨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 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데리고 하나님 앞에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 탕자의 대표가 되어 주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죄인들의 친구가 되고 대표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의 주변을 친구를 보면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의 주변을 보면 세리와 창기들 병든 자들이 늘 따라다닙니다.예수님의 주변을 보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어려서부터 잘 훈련되고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 될 그런 인재들이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오직 했으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 마 9:11거룩하고 경건하고 학식이 있고 세련되고 재물이 있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예수님 가까이 따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뭔가 쉽게 풀리지 않는 예수님의 비밀입니다 하늘의 법을 말씀하시고 하나님처럼 온전하라고 하신 분이 본인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시면서도 그러시면서도 죄인들과는 친구가 되어 잔치를 즐기시고........아무리 천하고 무능하고 너절한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어도 거기에는 늘 놀라운 일들이 넘쳐나고 부족한 것이 없었으며 지혜로운, 생전 처음 들어본 하나님의 말씀들이 강같이 흘러 넘쳤습니다. 힘이 있고 권세가 있고 은혜가 있었습니다. 죄인들이 예수님 주변에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런다고 거기에 죄악과 폭력과 무지가 혼란과 무질서로 인해서 경찰력이 동원되는 일은 없었습니다.세금 낼 돈이 없어서 물고기를 잡아 낼 만큼 빠뜻한 살림살이였지만 공중의 새도 깃들 곳이 있고 여우도 자기 굴이 있지만은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이 다니셨어도 누구에게 거지행색을 하고 다니신 일은 없습니다. 누구에게 구걸 하신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오병이어의 기적같은 것이 넘쳤습니다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바늘 끝 보다 더 예리한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에게서 죄를 발견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문둥이를 만지면 만진 사람이 문둥이가 되어야 합니다더러운 사람을 가까이 하면 본인도 그 꾸정물이라도 튀어 묻어야 정상입니다귀신들린 사람들을 가까이하면 자신도 이상해지기가 십상입니다창기들을 창기나 다름없는 여자들을 찾아가 만나서 어쩌겠다는 것입니까?그러나 예수님이 만지시면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예수님을 만지는 사람마다 병든 자는 질병이 떠나가고, 귀신들린 자는 귀신이 떠나가고창기는 성녀가 되었습니다. 구두쇠 노랭이 삭개오는 자선사업가가 됩니다그 거드름피우고 교만했던 제사장들 바리새인들도 통곡하면서 회개하는 돌아온 탕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만나주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죽은 자가 살아 나왔습니다.거룩함이 모든 죄와 죽음을 이겼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거룩함의 염병이 더러움과 부정함의 염병을 이겼습니다. 이렇게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면서 하늘과 땅을 흔들어 울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마 9:12-13예수님이 오신 긍극적인 목적은 하늘의 법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
천국의 윤리를 통해서 인간이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 가에 대하여 「절대적인 이상」을 말씀하시면서도 하나님은 그 절대적인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이룬 의인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돌아온 탕자를 껴안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시고 좋아서 눈물 흘리시는 우리들의 아버지 하나님.죄인들이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도록 한 없는 긍휼과 사랑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하나님이십니다.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내 놓으신 하나님이십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 요 6:57
성경은 단 한군데도 죄를 칭찬하거나 죄 자체를 두둔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롬 5:8
신약성경에 예수님께서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은 기록이 여덟 번 나옵니다그 중에 3번은 가나의 혼인 잔치. 마리아와 마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부활 후그저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회적 관행으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어울림이었습니다그러나 나머지 다섯 번은 세리와 창기 귀신들린 자 문둥이 집이었습니다그 당시 세리는 강도나 도적 살인자, 무뢰한 등과 같은 단어로 통했다.법정에서 세리의 증언은 효력이 없다. 세리의 돈은 헌금이나 구제로 쓰이는 것이 금지되었다그리고 세리들은 물물교환하는 것조차 거부당하는 사람들. 그 세리들을 데려다 제자 삼고 아예 찾아가서 집에 들어가 하루 저녁을 묵는 일조차 거리낌이 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어느 누구가사회적으로 이렇게까지 죄인취급을 받는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하려고 할련지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어떤 시위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이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 눅 14:21- 23
예수님의 활동기간에 아주 중요한 사람들로 나오는 인물들이 있습니다.태아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거지 바디매오. 12년 동안 하혈을 했던 병약한 한 여인문둥병자들. 귀신들렸던 여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 다섯 번째 남자와 살던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 여인, 동전 두 닢을 헌금했던 한 과부그 중에서도 예수님 자신이 처음으로 자신을 공개적으로 알렸던 것은 우물가 여인.영적인 성장이나 성경공부나 자기 변화 같은 수준 높은 이야기는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는 강도에게도 예수님은 함께 낙원을 약속하셨습니다죄인들과 함께, 죄인들을 위하여, 죄들때문에 오셨고 죄인들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이 감격.죄인들이 사는 타락한 세상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죄인들이 사는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죄를 장려하지 않으면서도, 죄짓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면서도 죄인들을 포용하고 세상을 정화시켜 나갈 수 있는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이 교회가 가져야 할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타락한 세상에 살면서도 같이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교회가 돈이 많은 것은 자랑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사람 숫자 많은 것도 부끄러워할 것은 아니지만 자랑은 아닙니다교회가 자랑하는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십자가의 능력은 죄인들을 위해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친구인 죄인들을 위해서 죽기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능력있는 사람.세련되고 좋은 성품의 잘난 사람 친구가 되는 일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비난받고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의 친구가 되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죄를 지어도 악질적이고 잔인하고 추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형수들의누나가 되어주고 엄마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형이 되어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이 과거를 씻어 털어버리고 천사같이 하늘 가는 밝은 길을 두렴없이 찬송 부르고 갈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누구든지 오라. 누군가를 죄인 딱지 붙여 놓고 다 되도 너는 안된다고.어떤 사람들은 자기 가족중의 한 사람을 그렇게 대합니다.어떤 사람들은 직장의 한 사람을 그렇게 합니다. 세리 마태를 제자 삼으시고 삭개오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예수님이십니다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하나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의 욕심과 교만, 허세와 시기질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이 세상에서 온전하고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이 세상에서 자기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이 세상에서 인간의 폭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이 세상에서 음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이 세상에서 거짓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우리에게 하나님처럼 온전하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처럼!또 한 가지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이라는 것.「너희 아버지」
세상에서 사람의 아들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같이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 불가능한 이상을 어떻게 응답하고 살아야 합니까?아예 무시하고 개같이 살수도 없고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버릴 수도 없고...그렇다고 그것을 온전히 다 이룰 수도 없고.....그래서 우리 범인들은 그저 적당히 상식과 중용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처음대하는 10대청소년들에게 반응을 물었습니다.①. 『 나는 종교란 아주 터무니 없는 속임수라고 생각한다.②.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읽은 것을 다 믿지 말라. 예수님 말씀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③. 나는 산상수훈 같은 글을 싫어한다. 산상수훈을 읽는 다는 것은 고역이다 그것은 나에게 완벽함을 강요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④. 이것은 억지다. 여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니 내가 지금까지 들어온 말 중에 가장 극단적이고 불합리하며 비인간적이다.
남의 나라 지배를 받는 식민지 국가 유대나라에서 로마의 폭력과 잔인함에 사지가 벌벌 떨리는 사람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강도와 살인자들에게까지도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하라고. 젊은 아들과 남편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갈릴리 여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황당하고 가혹하고 거부감이 생겼을 지를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조금도 주저없이 땅의 법이 아니라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늘의 법 하나님의 법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품어야 할 영원한 법을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끝나셨다면 우리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먼저 예수님께서 이 천국의 윤리 하나님의 법을 말씀하신 이유입니다.이 하늘의 법 앞에서는 인간의 모든 가면이 다 벗겨집니다.인간의 어떤 윤리 도덕도 어떤 율법이나 계명이나 계율도 사실 아무 도움이 못됩니다 어떤 도덕 군자도 어떤 성인이나 도통한 사람도 아무리 살아 있는 부처라고 해도 그 말이 빈 깡통에 불과한 것이요 우리들끼리 말 잔치에 불과한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우리들끼리 아무리 훌륭하고 높은 계급장이나 벼슬의 이름을 주어서 황제니 왕이니 백작이나 정승이나 대감이나 세계적인 석학이니 지성인이니별소리를 다 해도 사람의 실체가 눈꼽만큼이라도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을 죄인입니다사람이 아무리 신비하고 거룩한 척해도 결코 거룩하지 않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 일입니다. 자기의 전 재산을 다 사회에 헌납한 재벌 회장도 어떤 자선 사업가도어떤 이상주의자도 온갖 아름답고 심오한 천사의 말을 다 하고 다녀도,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한다고 해도 어떤 종교인도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불쌍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존재. 『형이 확정된 사형수』란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인간의 어떤 문명이나 문화도 어떤 철학이나 종교도 인간의 죄를 극복할 수가 없고 죽음을 넘어 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종교적인 속임수로도 가능하지 않습니다하나님의 법 앞에서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한지를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절망적인 존재들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사람이 자기 입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말이 있습니다.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 눅 18:13온갖 거드름을 다 피우면서 혹은 거룩한 척하면 자기 의에 빠져있는 종교인들에게는예수님은 가차없이 혹독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이 회칠한 무덤 같은 인간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있겠느냐?그러나 죄인들이 자기 죄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할 때는 저들이 살인자이었든 강도이었든 창기나 문둥이나 세리이었든 상관없이 묻지 않고 저들을 안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사람의 말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 예수님이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을 말하는 네 번째 설교입니다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하나님」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죄의 종노릇하면서 죄를 당연하게 죄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데까지 이른 죄인들인 것을 아십니다. 사람이 다 그런 것이지. 그 당연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우리는 이것은 아닌데 하고 속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본래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온전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를 알게 하셨습니다.인간의 진정한 비젼과 꿈과 목표와 이상을 인간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예수님은 자원하여 죄인들의 대표가 되셨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 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를 데리고 하나님 앞에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 탕자의 대표가 되어 주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죄인들의 친구가 되고 대표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의 주변을 친구를 보면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의 주변을 보면 세리와 창기들 병든 자들이 늘 따라다닙니다.예수님의 주변을 보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어려서부터 잘 훈련되고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 될 그런 인재들이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오직 했으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 마 9:11거룩하고 경건하고 학식이 있고 세련되고 재물이 있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예수님 가까이 따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뭔가 쉽게 풀리지 않는 예수님의 비밀입니다 하늘의 법을 말씀하시고 하나님처럼 온전하라고 하신 분이 본인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시면서도 그러시면서도 죄인들과는 친구가 되어 잔치를 즐기시고........아무리 천하고 무능하고 너절한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어도 거기에는 늘 놀라운 일들이 넘쳐나고 부족한 것이 없었으며 지혜로운, 생전 처음 들어본 하나님의 말씀들이 강같이 흘러 넘쳤습니다. 힘이 있고 권세가 있고 은혜가 있었습니다. 죄인들이 예수님 주변에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런다고 거기에 죄악과 폭력과 무지가 혼란과 무질서로 인해서 경찰력이 동원되는 일은 없었습니다.세금 낼 돈이 없어서 물고기를 잡아 낼 만큼 빠뜻한 살림살이였지만 공중의 새도 깃들 곳이 있고 여우도 자기 굴이 있지만은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이 다니셨어도 누구에게 거지행색을 하고 다니신 일은 없습니다. 누구에게 구걸 하신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오병이어의 기적같은 것이 넘쳤습니다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바늘 끝 보다 더 예리한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에게서 죄를 발견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문둥이를 만지면 만진 사람이 문둥이가 되어야 합니다더러운 사람을 가까이 하면 본인도 그 꾸정물이라도 튀어 묻어야 정상입니다귀신들린 사람들을 가까이하면 자신도 이상해지기가 십상입니다창기들을 창기나 다름없는 여자들을 찾아가 만나서 어쩌겠다는 것입니까?그러나 예수님이 만지시면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예수님을 만지는 사람마다 병든 자는 질병이 떠나가고, 귀신들린 자는 귀신이 떠나가고창기는 성녀가 되었습니다. 구두쇠 노랭이 삭개오는 자선사업가가 됩니다그 거드름피우고 교만했던 제사장들 바리새인들도 통곡하면서 회개하는 돌아온 탕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만나주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죽은 자가 살아 나왔습니다.거룩함이 모든 죄와 죽음을 이겼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거룩함의 염병이 더러움과 부정함의 염병을 이겼습니다. 이렇게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면서 하늘과 땅을 흔들어 울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마 9:12-13예수님이 오신 긍극적인 목적은 하늘의 법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
천국의 윤리를 통해서 인간이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 가에 대하여 「절대적인 이상」을 말씀하시면서도 하나님은 그 절대적인 하나님의 법을 온전히 이룬 의인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돌아온 탕자를 껴안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시고 좋아서 눈물 흘리시는 우리들의 아버지 하나님.죄인들이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서 설 수 있도록 한 없는 긍휼과 사랑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신 하나님이십니다.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내 놓으신 하나님이십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 요 6:57
성경은 단 한군데도 죄를 칭찬하거나 죄 자체를 두둔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롬 5:8
신약성경에 예수님께서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은 기록이 여덟 번 나옵니다그 중에 3번은 가나의 혼인 잔치. 마리아와 마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부활 후그저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회적 관행으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어울림이었습니다그러나 나머지 다섯 번은 세리와 창기 귀신들린 자 문둥이 집이었습니다그 당시 세리는 강도나 도적 살인자, 무뢰한 등과 같은 단어로 통했다.법정에서 세리의 증언은 효력이 없다. 세리의 돈은 헌금이나 구제로 쓰이는 것이 금지되었다그리고 세리들은 물물교환하는 것조차 거부당하는 사람들. 그 세리들을 데려다 제자 삼고 아예 찾아가서 집에 들어가 하루 저녁을 묵는 일조차 거리낌이 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어느 누구가사회적으로 이렇게까지 죄인취급을 받는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하려고 할련지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어떤 시위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이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 눅 14:21- 23
예수님의 활동기간에 아주 중요한 사람들로 나오는 인물들이 있습니다.태아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거지 바디매오. 12년 동안 하혈을 했던 병약한 한 여인문둥병자들. 귀신들렸던 여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 다섯 번째 남자와 살던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 여인, 동전 두 닢을 헌금했던 한 과부그 중에서도 예수님 자신이 처음으로 자신을 공개적으로 알렸던 것은 우물가 여인.영적인 성장이나 성경공부나 자기 변화 같은 수준 높은 이야기는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는 강도에게도 예수님은 함께 낙원을 약속하셨습니다죄인들과 함께, 죄인들을 위하여, 죄들때문에 오셨고 죄인들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이 감격.죄인들이 사는 타락한 세상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죄인들이 사는 세상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죄를 장려하지 않으면서도, 죄짓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면서도 죄인들을 포용하고 세상을 정화시켜 나갈 수 있는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이 교회가 가져야 할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타락한 세상에 살면서도 같이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교회가 돈이 많은 것은 자랑이 될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사람 숫자 많은 것도 부끄러워할 것은 아니지만 자랑은 아닙니다교회가 자랑하는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입니다.십자가의 능력은 죄인들을 위해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친구인 죄인들을 위해서 죽기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능력있는 사람.세련되고 좋은 성품의 잘난 사람 친구가 되는 일은 어렵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비난받고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의 친구가 되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죄를 지어도 악질적이고 잔인하고 추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형수들의누나가 되어주고 엄마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형이 되어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저들이 과거를 씻어 털어버리고 천사같이 하늘 가는 밝은 길을 두렴없이 찬송 부르고 갈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누구든지 오라. 누군가를 죄인 딱지 붙여 놓고 다 되도 너는 안된다고.어떤 사람들은 자기 가족중의 한 사람을 그렇게 대합니다.어떤 사람들은 직장의 한 사람을 그렇게 합니다. 세리 마태를 제자 삼으시고 삭개오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예수님이십니다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하나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예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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