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하나님 - 에수님이가르쳐 주신 하나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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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07-01-02 23:23 조회3,3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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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요일4:7-17
1. 살아 계신 인격을 가지고 사람들처럼 대면하여 만나고 그분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하나님.
개념이나 정신 무슨 혼 혹은 철학적, 신학적, 교리적 지식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인격적 실체가 있으신 하나님이십니다.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으시고 동적이며 결정하시고 선택하시며사랑하시고 또 사랑받으실 줄 아는 하나님이십니다. 생동감이 있고, 살아 계신 인격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사람같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소개할 때 그 사람에 관하여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일단 만나 보고 같이 살아보고 격어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됩니다.격어봤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불신하고 비판하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은 반의 반도 아니다사람을 믿어주고 인정해주고 관심을 갖고 인내하면서 사랑해 보세요.생각 밖으로 보석 같은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사랑. 마음을 드리고 조금만이라도 가까이 다가가 보세요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설명이 아닙니다. 경험이요 실제 생활이요 삶입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사실은 충격적인 파격입니다. 아버지의 존재 그 실재와 - 그 넉넉함과 든든함, 자상함
사실 유아들은 엄마의 이름도 모르고 엄마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아무 설명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느낌으로 냄새로 눈 맞춤으로이지만자신에게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알고 있습니다.자신을 잉태하고 하나의 세포에서 분화되어 사람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열달 동안 엄마와 한 몸이 되어 같이 했고 엄마를 먹고 같이 살았습니다.자신을 낳아주고 계속해서 돌봐주고 있는 이 엄마를 아이는 알고 있습니다말이나 언어보다 더 선험적인 인간의 감각입니다.어쩌다 이 엄마가 자신이 더듬어 찾을 수 있는 영역 안 에 없을 때어쩌다 이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이 아이의 눈물과 얼굴 표정을 보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불안하고 초조한 빛이 역력합니다. 엄마를 찾는 그 얼굴.그리고 엄마를 찾았을 때. 아직도 눈물이 글썽이지만 엄마 품에 안겼을 때 그 안도감. 잠시 후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웃을 때는 아이의 눈은 벌써 별이 되어 빛이 납니다.엄마는 아이에게 보이는 이 모든 것 뒤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엄마보다 더 크신 분을가르쳐주면서 자기 역할은 끝나는 것입니다엄마를 잡은 손이 하나님의 손을 잡도록온 몸과 마음을 기댄 엄마의 가슴 대신 하나님 품에 안기도록 도와주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엄마도 아이도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계신 인격으로서 실제적인 생활의 감각이요 느낌.우리들의 아버지요 어머니처럼 생생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2. 가만히 앉아서 인간들의 경배나 받으시고 연구 대상이나 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을 감시하시고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서 온갖 제물과 제사를 드려 神이신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야 하는 그런 관계 설정이 되어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인간들은 자신의 죄를 닦기 위서 온갖 고행과 수행을 해야 되고 온갖 선행과 착한 일을 많이 해야합니다. 그래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이러한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아무 답이 없이 다만 인간이 어떻게든 구도자가 되고자기 운명은 사람마다 자기 하기 나름이고 저마다 각자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니 알아서들 하라는 것 밖에는 아무 대책이 없이 가만히 앉아서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시계 바늘처럼 정확하게 원칙대로 자연의 법칙대로 움직일 수밖에는 기계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우리의 죄 문제를 우리 보다 더 먼저 걱정하시고 그 대책을 마련하시고 하나님께서 아버지 심정으로 먼저 그 아들의 죄를 자신이 짊어지시기고 그 댓가를 친히 감당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계획을 세우시고 행동하시는 하나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십니다사람의 육신을 입고 아기 예수로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 - 존재의 근거는 인격적 자유입니다.죄를 지어도, 타락해도 , 탕자가 되어도,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해버려도아버지를 거역하고 등을 돌리고, 아버지가 있니 없니 별소리를 다 해도......아버지는 아들의 그 인격적 자유를 손상하시지 않으십니다.아버지는 아들을 믿고 가산을 다 탕진해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그 아들이 죄를 버리고 돌아 와서 온전한 자유 거룩한 자유를 누리게 되기까지그 긴 시간을 인내하면서 그 엄청난 재물을 허비하면서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그 용납하시는 사랑 속에 녹아들어 있는 신적인 아픔을 감수하시면서 아들을 믿고 아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먼저 찾아오시고, 먼저 자신을 희생하시고, 상처받으시고 거절당하시고자신이 지은 피조물들에게 온갖 수모와 모욕을 받으시고 심지어 매도 맞으시고나무에 매달아 못을 박아 죽이면 죽임을 당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그러시면서 까지 아들을 얻으시고자 하셨고 아들을 사랑하셨습니다탕자가 돌아 왔을 때 그렇게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 받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비꼬았다고 합니다.어느 누가 제우스를 사랑했노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실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괴이한 것이 어디 그 뿐이랴 제우스가 인간을 사랑했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인간의 문명과 역사에서 우리는 신이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성경 밖에는 없습니다 . 같은 성경이지만 유대인들은 이 같은 하나님 사랑을 신앙과 생활로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러 왔다. ....성경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의도하신 본래의 목적대로 아들을 사랑하시고 아들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성경입니다.창세기 3장에서부터 계 22장까지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열망이 성경 페이지마다 뜨겁게 녹아 들어있는 것입니다
저의 신앙생활 여정에서 놀라움과 충격으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 나병환자들에게 간 다미안 신부. 식인종들에게 간 선교사들 이야기들을 듣다가「밀림 속의 십자가」,「영광의 문」이란 책을 통해서 자세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동과 충격을 받았던 일입니다.세상적으로 어디다 내놔도 반듯하고 잘나고 재능있고 젊고 장래가 밝은 아들들인데20대 초반에 . 그 나이면 무지개 빛 같은 아름다운 꿈들이 있을 나이인데도........글자도 없고, 문명과 완전히 차단된 그 중에서 사납고 거칠은 부족들에게들어가는 젊은 아들들을 봅니다. 선교사 집이 따로 있을 수가 없고 글자도 없는 사람들이기에 무슨 성경 찬송가가 있어서 예배를 드릴 수도 없고 동료 선교사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신부가 결혼해서 그런 곳에 들어가겠습니까?그렇게 혼자 20-30년 세월을 하나님 사랑, 예수님을 전한다는 목적을 잃어 버리지 않고 저들의 말을 배우고 글자를 만들고 성경을 번역하고 예배를 가르치고 그렇게 되기까지 때로는 문둥이가 되기도 하고 식인종들에 잡혀 먹히기도 하고 때로는 사납고 거칠은 부족들에게 들어가다가 독화살에 맞아 죽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희생을 내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저들의 마을에 교회를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 모든 드라마를 연출하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오늘날 그런 오지에 내 아들들이 간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집안이 발칵 뒤집힐 것입니다. 왜 내 아들이냐고....... 왜 내 남편이냐고........그러나 일찍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사실은 그 젊은 아들들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독생자를 보내신 아버지가 먼저 함께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들이 순교당할 때 하나님은 다시 한번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는 아픔을 감당하시면서 저들을 자녀 삼으시고자하시는 것입니다골고다의 십자가는 오늘도 이 세상 끝까지 모든 민족 모든 나라에 세워지고 있습니다이런 하나님을 인류는 한 번도 생각해낸 일이 없습니다이 세상 어느 문명에 이런 하나님을 예배하는 종족이 있는지 인류학자들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요일 4:10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은3.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요 10:11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 눅 15:4-6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가장 큰 이유는 우리를 너무나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하나님은 당신 곁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신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꽤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사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감수하실 정도로 그분께 당신은 최고의 존재다. 만일 하나님이 냉장고를 갖고 계시다면 냉장고 문에 당신의 사진이 붙어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지갑을 갖고 계시다면 지갑 안에 당신의 사진이 들어 있을 것이다.하나님은 당신에게 봄마다 꽃을, 아침마다 일출을 보여주신다. 당신이 대화를 요청할 때마다 하나님은 귀 기울이신다.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곳에 계실 수 있지만 어느 곳보다도 당신의 마음속에 머물고 싶어하신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당신에게 홀딱 빠지셨다.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키심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셨다.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신다하나님은 당신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하늘 입구에서 혹시나 하면서 당신을 기다리신다. 내 아이가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신다. 당신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이다. 하나님은 자녀를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이시며, 자신의 어린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다. 그의 다리는 긁혀 상처가 나고 발은 짓물렀지만 눈은 불같이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그는 절벽을 오르고 들판을 가로지르며 동굴을 살펴본다. 그는 입에 손을 대고 협곡을 향해 불러 본다. 그가 부르는 이름은 바로 당신의 이름이다......하나님은 모든 아들들과 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버리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집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당신의 이름을 부르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신다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알고 계신다. 아마존의 미개척 삼림지대로부터 뉴욕의 번화가까지 바이킹에서 우주비행사까지 움막에 거하는 사람에서 으리으리한 궁전에서 사는 왕까지 오두막을 짓는 사람에서 큰 건물의 기초를 놓는 사람까지 심지어 방랑자와 부랑아까지 그분은 우리 모두를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계셨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신다. 그분은 감격에 겨워하시며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자랑스러워하신다. 별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을 돌아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너는 나의 자녀다. 나는 너를 깊이 사랑한다. 언젠가 네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네가 이 한가지 사실만은 명심했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다시 돌아올 길도 만들어 놓았다.
4.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십니다. 참 신비로우신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죄를 속죄하십니다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 1:29.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어린 양을 드리는 유월절 대 속죄일 날 하나님은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셨습니다."…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 5: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4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5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6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아비처럼 이렇게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을 성경말고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제가 20대 때 참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흔들리는 제 마음을 붙잡아 주었던 詩가 있습니다. 결핵 말기로 사경에서 살아남은 김정준 목사님.
나는 주님의 것이외다!
나는 주님의 것이외다 나 주님의 것이 되고자 원하기 전에 주님은 나를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내 부모 형제에게서 선함이 없고 내 자신에게서 아무 의로움이 없지만 그저 주님은 나를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주님이 이것을 주님의 소유물로 하셨어도 천지나 역사에 털끝 만한 변함이 없겠지만 주님은 그저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내 과거나 현재도 죄 뿐이요 또 내 미래도 거룩한 보증을 할 수 없건만 그저 주님은 나를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이것을 주님의 소유로 하시오면 주님이 이것 위해 마음 쓰시기 괴로우실 텐데 그래도 주님은 주의 것이라 하나이다 이것이 주님 것 됨으로 주님의 곳간이 부해질 것 아니건만 그래도 주님은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내게는 배암 같은 간사함이 있고 표범 같은 악독함이 있사온데도 주님은 그래도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내 교만이 바벨처럼 높고 내 비루함이 수풀처럼 우거졌건만 그래도 주님은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음부도 내 흑암에 비길 바 못되고 우주도 오히려 내 죄악보다도 적건만 그래도 주님은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주님, 이것이 주님의 소유의 하나이오니 쓰셔도 당신 뜻, 또 버려도 당신의 뜻이외다 다만 당신의 뜻만이 이루어지사이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사람의 어떤 지고 지순한 사랑이 아니라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당신의 자녀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1. 살아 계신 인격을 가지고 사람들처럼 대면하여 만나고 그분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하나님.
개념이나 정신 무슨 혼 혹은 철학적, 신학적, 교리적 지식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인격적 실체가 있으신 하나님이십니다.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으시고 동적이며 결정하시고 선택하시며사랑하시고 또 사랑받으실 줄 아는 하나님이십니다. 생동감이 있고, 살아 계신 인격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사람같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소개할 때 그 사람에 관하여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일단 만나 보고 같이 살아보고 격어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됩니다.격어봤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불신하고 비판하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은 반의 반도 아니다사람을 믿어주고 인정해주고 관심을 갖고 인내하면서 사랑해 보세요.생각 밖으로 보석 같은 모습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세요. 사랑. 마음을 드리고 조금만이라도 가까이 다가가 보세요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설명이 아닙니다. 경험이요 실제 생활이요 삶입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사실은 충격적인 파격입니다. 아버지의 존재 그 실재와 - 그 넉넉함과 든든함, 자상함
사실 유아들은 엄마의 이름도 모르고 엄마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아무 설명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느낌으로 냄새로 눈 맞춤으로이지만자신에게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알고 있습니다.자신을 잉태하고 하나의 세포에서 분화되어 사람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열달 동안 엄마와 한 몸이 되어 같이 했고 엄마를 먹고 같이 살았습니다.자신을 낳아주고 계속해서 돌봐주고 있는 이 엄마를 아이는 알고 있습니다말이나 언어보다 더 선험적인 인간의 감각입니다.어쩌다 이 엄마가 자신이 더듬어 찾을 수 있는 영역 안 에 없을 때어쩌다 이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이 아이의 눈물과 얼굴 표정을 보신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불안하고 초조한 빛이 역력합니다. 엄마를 찾는 그 얼굴.그리고 엄마를 찾았을 때. 아직도 눈물이 글썽이지만 엄마 품에 안겼을 때 그 안도감. 잠시 후 엄마와 눈을 마주치고 웃을 때는 아이의 눈은 벌써 별이 되어 빛이 납니다.엄마는 아이에게 보이는 이 모든 것 뒤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엄마보다 더 크신 분을가르쳐주면서 자기 역할은 끝나는 것입니다엄마를 잡은 손이 하나님의 손을 잡도록온 몸과 마음을 기댄 엄마의 가슴 대신 하나님 품에 안기도록 도와주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엄마도 아이도 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계신 인격으로서 실제적인 생활의 감각이요 느낌.우리들의 아버지요 어머니처럼 생생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2. 가만히 앉아서 인간들의 경배나 받으시고 연구 대상이나 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을 감시하시고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서 온갖 제물과 제사를 드려 神이신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어야 하는 그런 관계 설정이 되어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인간들은 자신의 죄를 닦기 위서 온갖 고행과 수행을 해야 되고 온갖 선행과 착한 일을 많이 해야합니다. 그래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이러한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아무 답이 없이 다만 인간이 어떻게든 구도자가 되고자기 운명은 사람마다 자기 하기 나름이고 저마다 각자가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니 알아서들 하라는 것 밖에는 아무 대책이 없이 가만히 앉아서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시계 바늘처럼 정확하게 원칙대로 자연의 법칙대로 움직일 수밖에는 기계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셨습니다우리의 죄 문제를 우리 보다 더 먼저 걱정하시고 그 대책을 마련하시고 하나님께서 아버지 심정으로 먼저 그 아들의 죄를 자신이 짊어지시기고 그 댓가를 친히 감당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계획을 세우시고 행동하시는 하나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십니다사람의 육신을 입고 아기 예수로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 - 존재의 근거는 인격적 자유입니다.죄를 지어도, 타락해도 , 탕자가 되어도,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해버려도아버지를 거역하고 등을 돌리고, 아버지가 있니 없니 별소리를 다 해도......아버지는 아들의 그 인격적 자유를 손상하시지 않으십니다.아버지는 아들을 믿고 가산을 다 탕진해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그 아들이 죄를 버리고 돌아 와서 온전한 자유 거룩한 자유를 누리게 되기까지그 긴 시간을 인내하면서 그 엄청난 재물을 허비하면서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그 용납하시는 사랑 속에 녹아들어 있는 신적인 아픔을 감수하시면서 아들을 믿고 아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먼저 찾아오시고, 먼저 자신을 희생하시고, 상처받으시고 거절당하시고자신이 지은 피조물들에게 온갖 수모와 모욕을 받으시고 심지어 매도 맞으시고나무에 매달아 못을 박아 죽이면 죽임을 당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그러시면서 까지 아들을 얻으시고자 하셨고 아들을 사랑하셨습니다탕자가 돌아 왔을 때 그렇게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 받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비꼬았다고 합니다.어느 누가 제우스를 사랑했노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실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괴이한 것이 어디 그 뿐이랴 제우스가 인간을 사랑했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인간의 문명과 역사에서 우리는 신이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성경 밖에는 없습니다 . 같은 성경이지만 유대인들은 이 같은 하나님 사랑을 신앙과 생활로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러 왔다. ....성경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의도하신 본래의 목적대로 아들을 사랑하시고 아들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성경입니다.창세기 3장에서부터 계 22장까지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열망이 성경 페이지마다 뜨겁게 녹아 들어있는 것입니다
저의 신앙생활 여정에서 놀라움과 충격으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 나병환자들에게 간 다미안 신부. 식인종들에게 간 선교사들 이야기들을 듣다가「밀림 속의 십자가」,「영광의 문」이란 책을 통해서 자세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동과 충격을 받았던 일입니다.세상적으로 어디다 내놔도 반듯하고 잘나고 재능있고 젊고 장래가 밝은 아들들인데20대 초반에 . 그 나이면 무지개 빛 같은 아름다운 꿈들이 있을 나이인데도........글자도 없고, 문명과 완전히 차단된 그 중에서 사납고 거칠은 부족들에게들어가는 젊은 아들들을 봅니다. 선교사 집이 따로 있을 수가 없고 글자도 없는 사람들이기에 무슨 성경 찬송가가 있어서 예배를 드릴 수도 없고 동료 선교사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신부가 결혼해서 그런 곳에 들어가겠습니까?그렇게 혼자 20-30년 세월을 하나님 사랑, 예수님을 전한다는 목적을 잃어 버리지 않고 저들의 말을 배우고 글자를 만들고 성경을 번역하고 예배를 가르치고 그렇게 되기까지 때로는 문둥이가 되기도 하고 식인종들에 잡혀 먹히기도 하고 때로는 사납고 거칠은 부족들에게 들어가다가 독화살에 맞아 죽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희생을 내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저들의 마을에 교회를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 모든 드라마를 연출하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오늘날 그런 오지에 내 아들들이 간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집안이 발칵 뒤집힐 것입니다. 왜 내 아들이냐고....... 왜 내 남편이냐고........그러나 일찍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사실은 그 젊은 아들들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 독생자를 보내신 아버지가 먼저 함께 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저들이 순교당할 때 하나님은 다시 한번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는 아픔을 감당하시면서 저들을 자녀 삼으시고자하시는 것입니다골고다의 십자가는 오늘도 이 세상 끝까지 모든 민족 모든 나라에 세워지고 있습니다이런 하나님을 인류는 한 번도 생각해낸 일이 없습니다이 세상 어느 문명에 이런 하나님을 예배하는 종족이 있는지 인류학자들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요일 4:10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하나님은3.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요 10:11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 눅 15:4-6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가장 큰 이유는 우리를 너무나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하나님은 당신 곁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신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꽤 오랫동안 이 땅에서 사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감수하실 정도로 그분께 당신은 최고의 존재다. 만일 하나님이 냉장고를 갖고 계시다면 냉장고 문에 당신의 사진이 붙어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지갑을 갖고 계시다면 지갑 안에 당신의 사진이 들어 있을 것이다.하나님은 당신에게 봄마다 꽃을, 아침마다 일출을 보여주신다. 당신이 대화를 요청할 때마다 하나님은 귀 기울이신다.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곳에 계실 수 있지만 어느 곳보다도 당신의 마음속에 머물고 싶어하신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당신에게 홀딱 빠지셨다.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키심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셨다.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신다하나님은 당신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은 하늘 입구에서 혹시나 하면서 당신을 기다리신다. 내 아이가 스쳐 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신다. 당신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이다. 하나님은 자녀를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이시며, 자신의 어린 양을 찾아 헤매는 목자다. 그의 다리는 긁혀 상처가 나고 발은 짓물렀지만 눈은 불같이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그는 절벽을 오르고 들판을 가로지르며 동굴을 살펴본다. 그는 입에 손을 대고 협곡을 향해 불러 본다. 그가 부르는 이름은 바로 당신의 이름이다......하나님은 모든 아들들과 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버리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집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당신의 이름을 부르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신다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알고 계신다. 아마존의 미개척 삼림지대로부터 뉴욕의 번화가까지 바이킹에서 우주비행사까지 움막에 거하는 사람에서 으리으리한 궁전에서 사는 왕까지 오두막을 짓는 사람에서 큰 건물의 기초를 놓는 사람까지 심지어 방랑자와 부랑아까지 그분은 우리 모두를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계셨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신다. 그분은 감격에 겨워하시며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자랑스러워하신다. 별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을 돌아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너는 나의 자녀다. 나는 너를 깊이 사랑한다. 언젠가 네가 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네가 이 한가지 사실만은 명심했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다시 돌아올 길도 만들어 놓았다.
4.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십니다. 참 신비로우신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죄를 속죄하십니다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 1:29.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어린 양을 드리는 유월절 대 속죄일 날 하나님은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셨습니다."…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 5:7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4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5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6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아비처럼 이렇게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을 성경말고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제가 20대 때 참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흔들리는 제 마음을 붙잡아 주었던 詩가 있습니다. 결핵 말기로 사경에서 살아남은 김정준 목사님.
나는 주님의 것이외다!
나는 주님의 것이외다 나 주님의 것이 되고자 원하기 전에 주님은 나를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내 부모 형제에게서 선함이 없고 내 자신에게서 아무 의로움이 없지만 그저 주님은 나를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주님이 이것을 주님의 소유물로 하셨어도 천지나 역사에 털끝 만한 변함이 없겠지만 주님은 그저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내 과거나 현재도 죄 뿐이요 또 내 미래도 거룩한 보증을 할 수 없건만 그저 주님은 나를 주님의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이것을 주님의 소유로 하시오면 주님이 이것 위해 마음 쓰시기 괴로우실 텐데 그래도 주님은 주의 것이라 하나이다 이것이 주님 것 됨으로 주님의 곳간이 부해질 것 아니건만 그래도 주님은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내게는 배암 같은 간사함이 있고 표범 같은 악독함이 있사온데도 주님은 그래도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내 교만이 바벨처럼 높고 내 비루함이 수풀처럼 우거졌건만 그래도 주님은 "너는 내 것이라" 하나이다
음부도 내 흑암에 비길 바 못되고 우주도 오히려 내 죄악보다도 적건만 그래도 주님은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나이다
주님, 이것이 주님의 소유의 하나이오니 쓰셔도 당신 뜻, 또 버려도 당신의 뜻이외다 다만 당신의 뜻만이 이루어지사이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사람의 어떤 지고 지순한 사랑이 아니라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당신의 자녀 삼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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