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찾아오신 하나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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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06-12-10 21:09 조회3,29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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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찾아오신 하나님 요14:1-11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예수님. 착하게 살고 선하게 좋은 일 많이 하면 잘되고 상 받고 천국 가게 해주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성경에서 알게 되는 예수님의 지극히 작은 - 정말 눈꼽보다 더 작은 일부분입니다.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인간의 총체적인 구원에 관해서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도록 우리들 가까이 찾아오신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예수님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른 모든 종교와 구분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과 행동을 하시고 증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란 실로 깊고 끝이 없습니다.세상을 다 가져도 인간의 소유의 문제는 답이 안나옵니다. 얼마나 가지면 행복?박사학위를 10개 가질 만큼 공부를 해도 인간의 지식의 문제가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누가 누구를 가르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다온 지구를 다 정복하고 달을 정복하고 태양계를 다 정복해도 인간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알렉산더 징기스칸이 된다고 사람이 왕이 되는 것도 아니다.징기스칸이 인류문명에 남다르게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재능을 발휘했어도 그가 내가 곧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오늘날 「문선명」이가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상의 허망함은 바다를 먹물 삼고 하늘을 종이 삼아 다 쓸려고 해도 다 쓸 수 없는 것이 인간과 세상의 허무- 허망함입니다.인간이 죄인입니다. 이 죄라는 병을 치료할 의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이 죄 때문에 날마다 크고 작은 전쟁과 갈등 분쟁 반목, 시기 질투........고난과 고통이 끝이 없습니다. 이 지구는 마치 정신병동이나 마찬가지입니다부모 자식간에도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평화를 지속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 자체이뿐 아니라 인간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그리고 너나 없이 똑같이 가야하는 죽음과 무덤을 향한 끝없는 행렬에 우리 모두 다 형이 확정된 사형수로 서 있는 것입니다.여기서 도망 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끼리 적당하게 덮어두고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잘 묵고 잘 살다가 조용히 끝내자고 한다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수많은 행복의 길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철학과 종교, 사이비종교들이 있지만 이 세상에 완전하고 영원히 행복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를 포함해서.완전하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실도 아니고 행복도 아닙니다.
인간의 문제는 윤리 도덕의 문제 정도가 아닙니다인간의 문제는 돈 벌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라면 저도 목사 안 합니다. 돈이 인생의 답이라면 돈 벌고 말지요.인간의 문제는 공부해서 수행이나 도닦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아직도 그런 순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종교지도자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전혀 다른 길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자신의 답이 있습니다.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바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예수님의 말씀이 석가나 공자의 가르침 같은 것이라면 아무리 그 말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 가르침은 인간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생명이 없습니다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무슨 말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석가나 공자는 자신들이 인정하듯이 그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그들은 인류의 위대한 선생님 정도입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들 중의 뛰어난 분들입니다. 정말로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분들을 따르거나 예배하지는 않습니다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가진 사람들입니다여전히 저들도 구원받아야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면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인류가, 모든 부자들 천재 영웅 위인 성인군자가 다 달려들어도 넘어갈 수 없었던...........저들은 한결같이 모두가 「여기 까지」입니다.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서는 바로 그 한계를 넘어서 저쪽과 이쪽을 넘나들면서 말씀하시고 보이는 증거를 보여 주십니다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그 이상The Above, 그 넘어 The Over를 하나님과 그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예수님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되고 구체적인 하나님의 밑그림이 그려집니다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의 현재와 그 장래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요14:1-3, 6 9-10, 마 11:28, 28:20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런 말들이 사람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선입관을 버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요.
이런 말씀들을 석가나 공자가 소크라테스나 마호멧이 했으면 전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이나, 그들의 인격과 생애가 이 말들을 바쳐줄 수가 없다. 저들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는 말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의 차이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까이 찾아오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고자 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들 곁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머물러 계셨고 우리는 그분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고 무슨 말씀을 하셨고 무엇을 보여주셨는지를 눈과 귀와 손으로 보고 듣고 만졌고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곁에 보았습니다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심으로 시작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무엇보다도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3절) 멀리 계시는 것처럼 보이던 하나님께서 우리 가까이 오셨습니다. 교제할 수 없을 것 같이 높아 보이던 하나님이 맘껏 친구처럼 교제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가까이 오셨습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 귀로 들을 수 있으며,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곧 우리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으로 우리 곁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늘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신 것입니다다만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신비입니다. 예수님을 귀납적으로 살펴보든지 연역적으로 살펴보던지 뒤집어 보든지 엎어서 보시든지 똑바로 보든지, 앞으로, 뒤로 .........어디로 어떻게 보든지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이시라고.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설명이 안됩니다.
인간 역사 속에서 인류는 神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와 신화와 철학. 신학이 있었습니다.대부분이 조잡한 신화나 사이비 종교였고 아니면 철학적 신학적 접근이 있었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어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가 없었습니다그래도 역사적이고 실제 한 민족의 오랜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이 그려내고 예배하는 하나님은 실로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룩하시고 사람이 찢어낼 수가 없는 거룩 휘장으로 자신을 가리울 수 밖에 없는 하나님.사람이 한 번씩 만나려면 유월절 절기 같은 때면 수 십만 마리의 짐승들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죽어가야 했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사실상 넘을 수 없는 강이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는 바라다보는 것조차도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면 3, 4대까지 징벌하시는 하나님.설혹 죄를 용서하신다고 할지라도 그 죄 값을 반드시 갚으시는 철저하신 하나님저들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사람의 더러운 입술로 발음할 수가 없었고하나님의 그 이름을 죄지은 손으로 쓸 수가 없어서 대명사로 표기할 정도.그런데 그런 분위기에서 살아가는 저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학적으로 정의할 때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접근으로 서술합니다불멸..............없어지거나 소멸하는 존재가 아니다. 영원하신 분비가시적.....보이는 분이 아니시니 보이는 어떤 것으로 설명이 불가능하신 분무한...........어떤 한계가 없으시다.죄가 없으시다.......죄가 없으시면 어떤 상태인지? 거룩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다르다는 구별된다는 정도.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14:11)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보았고 만졌고 들었고 느꼈습니다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확 바꾸어 놓았습니다. 보이는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사람의 육신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기도 하였고, 아예 동네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들어오시는 것을 거절한 마을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거절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는 하나님으로 우리 앞에 서 계셨습니다.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는 하나님으로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정말로 작아지고 작아지신 실물 하나님으로우리 앞에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신약 성경의 힘찬 증언을 들어 보십시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요 1:18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 1:14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 2:6-8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5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요일 1:1-3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 요일 5:20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시켜서,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시켜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하나님의 본바탕의 본보기이시요,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히 1:1-3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된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의 모습으로 그려집니까? "예수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심각한 필요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실체를 발견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인품을 가지셨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며,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한가를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깨닫고,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진면모를 확인한 사람에게는 혁명이 일어납니다. 오늘 이 혁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 세상에 오신 하나님, 내 곁에 오신 하나님,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 내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사람의 인격 안에 혁명이 일어납니다.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그러나 좋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처음 대중 앞에 나타나셨을 때 어떤 모습이셨습니까?우리가 얼마든지 가까이 가서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 그분의 눈에 눈동자를 맞추면서 얼마든지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대중 앞에 나타나셨을 때 가난한 자들, 고통 당하는 자들, 세상에서 짓밟히는 자들에게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들을 일일이 찾아가 가까이 하며 함께 식사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해주마.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비록 세상에서는 고생하고, 고통하고, 짓밟히지만 하나님은 너희를 사랑하셔서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고 나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가슴 속에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내가 울 때 내 곁에서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하나님, 내가 좌절하고 앉아서 일어나지를 못할 때 내 곁에 와서 내 손을 붙들고 일으켜주시는 하나님. 그러나 전에는 이런 하나님을 감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때문에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발견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을 흔들어 깨움으로, 우리의 감성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감정을 달구시는 하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느낌을 통해 가까이 접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게 임마누엘 하나님입니다. 옛날처럼 멀리 보이던 하나님, 높이 보이던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 안에 나와 함께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주실 이 주 예수"-찬송 93장이 찬송은 그냥 부를 수 있는 찬송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에 부를 수 있는 찬송입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근심에 짓눌려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그 옆에 와 계시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아니다. 진짜 사랑의 하나님은 네가 울 때 네 옆에 있단다. 너의 눈물을 씻어 주신단다. 어떤 때는 너와 함께 울기도 하시지. 네가 근심에 쌓일 때 그 근심을 덜어주려고 네 곁에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신 분이 바로 임마누엘 예수님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 363장 1절
이 찬송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벌써 내 곁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여 놓았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완전히 들끓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머리로만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마음으로 영으로 아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보이고 높이 계시는 거룩하신 분이지만, 그 하나님을 우리 가까이에 접근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우리 가슴으로 느끼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그 하나님 때문에 울고, 웃고, 찬양하고, 어떤 때는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도록 만든 배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곁에 와 계시다는 것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런 하나님을 알고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을 움직이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천둥 번개치고 장대비가 쏟아질 때 병아리들은 어미 닭 품속으로 들어갑니다.족제비가 달려들 때에 온 깃털이 다 들고일어나도록 무서움이 엄습할 때에도저들은 어미 닭 품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를 품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예수님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가까이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가까이에서 어떤 분인가를 세밀하게 느끼도록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임마누엘 하나님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하나님을 성탄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은혜를 우리가 마음에 꼭 담기를 바랍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예수님. 착하게 살고 선하게 좋은 일 많이 하면 잘되고 상 받고 천국 가게 해주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성경에서 알게 되는 예수님의 지극히 작은 - 정말 눈꼽보다 더 작은 일부분입니다.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인간의 총체적인 구원에 관해서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도록 우리들 가까이 찾아오신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예수님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른 모든 종교와 구분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과 행동을 하시고 증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문제란 실로 깊고 끝이 없습니다.세상을 다 가져도 인간의 소유의 문제는 답이 안나옵니다. 얼마나 가지면 행복?박사학위를 10개 가질 만큼 공부를 해도 인간의 지식의 문제가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누가 누구를 가르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다온 지구를 다 정복하고 달을 정복하고 태양계를 다 정복해도 인간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알렉산더 징기스칸이 된다고 사람이 왕이 되는 것도 아니다.징기스칸이 인류문명에 남다르게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재능을 발휘했어도 그가 내가 곧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오늘날 「문선명」이가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상의 허망함은 바다를 먹물 삼고 하늘을 종이 삼아 다 쓸려고 해도 다 쓸 수 없는 것이 인간과 세상의 허무- 허망함입니다.인간이 죄인입니다. 이 죄라는 병을 치료할 의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이 죄 때문에 날마다 크고 작은 전쟁과 갈등 분쟁 반목, 시기 질투........고난과 고통이 끝이 없습니다. 이 지구는 마치 정신병동이나 마찬가지입니다부모 자식간에도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평화를 지속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 자체이뿐 아니라 인간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그리고 너나 없이 똑같이 가야하는 죽음과 무덤을 향한 끝없는 행렬에 우리 모두 다 형이 확정된 사형수로 서 있는 것입니다.여기서 도망 갈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끼리 적당하게 덮어두고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잘 묵고 잘 살다가 조용히 끝내자고 한다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수많은 행복의 길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철학과 종교, 사이비종교들이 있지만 이 세상에 완전하고 영원히 행복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를 포함해서.완전하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실도 아니고 행복도 아닙니다.
인간의 문제는 윤리 도덕의 문제 정도가 아닙니다인간의 문제는 돈 벌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라면 저도 목사 안 합니다. 돈이 인생의 답이라면 돈 벌고 말지요.인간의 문제는 공부해서 수행이나 도닦아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아직도 그런 순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종교지도자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전혀 다른 길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자신의 답이 있습니다.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바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예수님의 말씀이 석가나 공자의 가르침 같은 것이라면 아무리 그 말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 가르침은 인간에게 구원을 줄 수 있는 생명이 없습니다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무슨 말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합니다석가나 공자는 자신들이 인정하듯이 그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그들은 인류의 위대한 선생님 정도입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들 중의 뛰어난 분들입니다. 정말로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분들을 따르거나 예배하지는 않습니다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가진 사람들입니다여전히 저들도 구원받아야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면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인류가, 모든 부자들 천재 영웅 위인 성인군자가 다 달려들어도 넘어갈 수 없었던...........저들은 한결같이 모두가 「여기 까지」입니다.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서는 바로 그 한계를 넘어서 저쪽과 이쪽을 넘나들면서 말씀하시고 보이는 증거를 보여 주십니다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그 이상The Above, 그 넘어 The Over를 하나님과 그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예수님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되고 구체적인 하나님의 밑그림이 그려집니다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의 현재와 그 장래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요14:1-3, 6 9-10, 마 11:28, 28:20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런 말들이 사람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선입관을 버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요.
이런 말씀들을 석가나 공자가 소크라테스나 마호멧이 했으면 전혀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이나, 그들의 인격과 생애가 이 말들을 바쳐줄 수가 없다. 저들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는 말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의 차이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까이 찾아오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함께 은혜를 나고자 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들 곁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머물러 계셨고 우리는 그분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고 무슨 말씀을 하셨고 무엇을 보여주셨는지를 눈과 귀와 손으로 보고 듣고 만졌고 느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곁에 보았습니다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심으로 시작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봅니다무엇보다도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3절) 멀리 계시는 것처럼 보이던 하나님께서 우리 가까이 오셨습니다. 교제할 수 없을 것 같이 높아 보이던 하나님이 맘껏 친구처럼 교제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가까이 오셨습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 귀로 들을 수 있으며,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곧 우리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으로 우리 곁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늘에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신 것입니다다만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신비입니다. 예수님을 귀납적으로 살펴보든지 연역적으로 살펴보던지 뒤집어 보든지 엎어서 보시든지 똑바로 보든지, 앞으로, 뒤로 .........어디로 어떻게 보든지 예수님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이시라고.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설명이 안됩니다.
인간 역사 속에서 인류는 神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와 신화와 철학. 신학이 있었습니다.대부분이 조잡한 신화나 사이비 종교였고 아니면 철학적 신학적 접근이 있었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어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그림을 그려낼 수가 없었습니다그래도 역사적이고 실제 한 민족의 오랜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이 그려내고 예배하는 하나님은 실로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룩하시고 사람이 찢어낼 수가 없는 거룩 휘장으로 자신을 가리울 수 밖에 없는 하나님.사람이 한 번씩 만나려면 유월절 절기 같은 때면 수 십만 마리의 짐승들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죽어가야 했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는 것은 사실상 넘을 수 없는 강이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는 바라다보는 것조차도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면 3, 4대까지 징벌하시는 하나님.설혹 죄를 용서하신다고 할지라도 그 죄 값을 반드시 갚으시는 철저하신 하나님저들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사람의 더러운 입술로 발음할 수가 없었고하나님의 그 이름을 죄지은 손으로 쓸 수가 없어서 대명사로 표기할 정도.그런데 그런 분위기에서 살아가는 저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학적으로 정의할 때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접근으로 서술합니다불멸..............없어지거나 소멸하는 존재가 아니다. 영원하신 분비가시적.....보이는 분이 아니시니 보이는 어떤 것으로 설명이 불가능하신 분무한...........어떤 한계가 없으시다.죄가 없으시다.......죄가 없으시면 어떤 상태인지? 거룩이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다르다는 구별된다는 정도.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14:11)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보았고 만졌고 들었고 느꼈습니다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확 바꾸어 놓았습니다. 보이는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사람의 육신을 가지신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기도 하였고, 아예 동네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들어오시는 것을 거절한 마을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거절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는 하나님으로 우리 앞에 서 계셨습니다.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보이는 하나님으로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정말로 작아지고 작아지신 실물 하나님으로우리 앞에 자신을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신약 성경의 힘찬 증언을 들어 보십시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요 1:18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 1:14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 2:6-8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5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요일 1:1-3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 요일 5:20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시켜서,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시켜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하나님의 본바탕의 본보기이시요, 자기의 능력 있는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히 1:1-3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된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의 모습으로 그려집니까? "예수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진짜 심각한 필요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실체를 발견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인품을 가지셨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며,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한가를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깨닫고, 예수님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진면모를 확인한 사람에게는 혁명이 일어납니다. 오늘 이 혁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 세상에 오신 하나님, 내 곁에 오신 하나님, 나를 만나주신 하나님, 내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사람의 인격 안에 혁명이 일어납니다.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그러나 좋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처음 대중 앞에 나타나셨을 때 어떤 모습이셨습니까?우리가 얼마든지 가까이 가서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 그분의 눈에 눈동자를 맞추면서 얼마든지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대중 앞에 나타나셨을 때 가난한 자들, 고통 당하는 자들, 세상에서 짓밟히는 자들에게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들을 일일이 찾아가 가까이 하며 함께 식사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해주마.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비록 세상에서는 고생하고, 고통하고, 짓밟히지만 하나님은 너희를 사랑하셔서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고 나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가슴 속에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내가 울 때 내 곁에서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하나님, 내가 좌절하고 앉아서 일어나지를 못할 때 내 곁에 와서 내 손을 붙들고 일으켜주시는 하나님. 그러나 전에는 이런 하나님을 감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때문에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발견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을 흔들어 깨움으로, 우리의 감성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감정을 달구시는 하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느낌을 통해 가까이 접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게 임마누엘 하나님입니다. 옛날처럼 멀리 보이던 하나님, 높이 보이던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 안에 나와 함께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주실 이 주 예수"-찬송 93장이 찬송은 그냥 부를 수 있는 찬송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에 부를 수 있는 찬송입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근심에 짓눌려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그 옆에 와 계시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아니다. 진짜 사랑의 하나님은 네가 울 때 네 옆에 있단다. 너의 눈물을 씻어 주신단다. 어떤 때는 너와 함께 울기도 하시지. 네가 근심에 쌓일 때 그 근심을 덜어주려고 네 곁에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신 분이 바로 임마누엘 예수님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 363장 1절
이 찬송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벌써 내 곁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여 놓았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완전히 들끓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머리로만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마음으로 영으로 아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보이고 높이 계시는 거룩하신 분이지만, 그 하나님을 우리 가까이에 접근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우리 가슴으로 느끼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그 하나님 때문에 울고, 웃고, 찬양하고, 어떤 때는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도록 만든 배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곁에 와 계시다는 것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런 하나님을 알고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을 움직이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천둥 번개치고 장대비가 쏟아질 때 병아리들은 어미 닭 품속으로 들어갑니다.족제비가 달려들 때에 온 깃털이 다 들고일어나도록 무서움이 엄습할 때에도저들은 어미 닭 품속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를 품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예수님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가까이 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가까이에서 어떤 분인가를 세밀하게 느끼도록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임마누엘 하나님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하나님을 성탄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임마누엘의 은혜를 우리가 마음에 꼭 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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