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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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11-30 00:00 조회3,2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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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 마23: 23-3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 창 1:31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의 모습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로서는 주신 복을 누리며 사는 삶이 바른 삶이요, 영적인 삶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권리를 주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감동적인 복을 이미 주셨다그런데 우리들이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아간다면 그런 삶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이냐가 문제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산다고 말할 때에 그 행복의 기준이 무엇이냐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행복의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다.각자의 가치관내지 인생관에 따라 행복의 기준이 달라지겠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건인데 사람에 따라서 전혀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이다그렇다면 크리스챤들에게 있어 행복의 기준을 결정하는 가치관은 어떤 가치관이어야 할까? 바로 성경에 기초를 둔 가치관일 수 밖에 없다. 우리들에게는 성경을 벗어난 가치관은 허용될 수 없다. 그런 가치관은 겉보기에는 아무리 그럴듯할지라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 바른 가치관일 수가 없다. 저는 성경에 바탕을 둔 행복에 관한 바른 가치관으로 다섯 가지를 들고 싶다.
첫째는 우리들의 정신세계의 내면內面 곧 속 사람을 소중히 하는 가치관이다.
마태복음 23장 26절 말씀에 의하면 안을 깨끗이 하면 겉은 뒤따라 깨끗하게 된다. 우리들에게는 「안」이 중요하다. 오늘의 세계는 너무나 「겉」에 치우치고 있다. 사람들의 가치관 내지 문화의 흐름이 겉치레에 매여 있어 「속 사람」을 가꾸는 일에 너무나 소홀하다. 우리는 속 사람을 알차게 다져 그 결과로 겉 사람도 부요하여 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삶이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첫 출발이 된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속 사람 안입니다. 그 사람의 내면 세계입니다 그 사람의 영혼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생각의 질에서 결정된다. 구약 성경의 잠언서는 사람에게 지혜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없다는 것을 누누이 반복해서 여러 가지말로 강조하고 있다지혜가, 생각이 그 사람 속에서 내면화되고 습관화되고 체질화되어서그 사람의 인격이 되고 성품과 인품이 되는 과정에서 그 열매로 행복을열리는 것이다. 앞뒤도 없이 행복해지려고 아둥바둥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해 질 수 있는 조건을 지키며 착실하게 내실을 기하면서 속이 꽉 차도록 살다보면행복은 열매로 맺어지는 겁니다.
사람의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합니다. 속은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겉은 회칠한 무덤같이 하얗게 깨끗하게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마 23:28
마23장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종교와 그 제도, 문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기득권은 다 챙기고 욕심부리고 다 누리면서도 정말로 생명 그 자체요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은 없고 사람 앞에 보일려고 하는 위선과 거짓을 통렬하게 꾸짖으시는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이나 할례나 십일조문제는 율법과 신앙을 담보하는 그릇입니다. 이것이 깨지면 그 안에 있는 내용물들은 다 쏟아져 버리는 것이고 사회라는 판이 깨지는 것이다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세부 조항들이나아주 중요한 제도적 문제이거나, 시스템의 문제이거나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거나 무시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그러나「율법의 더 중한바」 더 중심적이거나 더 결정적인 일율법의 핵심. 그 정신 혼. 율법의 생명. 이것을 담아내기 위해서 세부항목이 있고 여러 가지 규정과 제도 있는데 본질적인 것은 내용은 다 빠져 버리고 빈 껍데기를 붙들고 자신들의 일신상의 이득과 안일만 챙기고 그렇게 하면서 백성들까지 눈을 멀게 만드는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 율법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중요한 세 단어를 말씀하셨습니다1. 義 옳음......떳떳함 당당함 자유2. 仁 어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정말 마음을 다해서 신실하고 공경하는 마음 사람에 대해서는 어질고 착하고 관용하고 너그러운 성품. 인품3. 信. 신의.........신뢰 믿음 육신이 두 쪽이 나도 한 번 약속한 것은 지키는 진실함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그렇게 믿고 자기 진실을 지키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끝없는 신뢰를 보내는 것
우리는 정신적인 내면의 세계를 충실히 해야 됩니다. 율법과 은혜의 대립각을 세우면서 구원을 논하기 전에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이요 기초입니다. 사람이 가져야할 기본 정신입니다. 이 기본이 충실해야죄인, 의롭다함을 받는 것.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고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말이 가지는 그 신비 놀라움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시대는 너무 변화가 많고 빠르고 너무 요란 떠는 시대입니다. 자기 속이 딱 알차게 차 있지 못한 사람은 자꾸 세상 물결 따라, 유행 따라,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라서 흔들립니다. 자기의 영적인, 정신적인, 정서적인 내면세계가 확실하게 서있지 못하면살아갈 때 부딪히는 시련이나 재난에 대해서 바로 대처하지를 못하고불안하고 허둥지둥합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알라스카에 갔을 때 집회가 끝나고 성도들과 식당에서 식사하는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진도 7.9도니까 아주 큰 지진입니다. 그리고 시간도 길어서 보통 지진보다 3-4배 가량 아주 길게 땅이 흔들렸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니까, 같이 식사하던 분들이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갔으나그 분은 그냥 계속해서 식사했습니다. 지진이 와서 땅이 흔들리는데 밖으로 뛴다고 어디로 갑니까? 그런데 지진 끝난 뒤에 같이 식사하던 성도들이 하는 말이 한국은 지진이 없어서 목사님이 몰라서 태연하다고 해요.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내가 무식해서 용감한 점도 있겠지만 도망가면 어딜 가요? 땅이 흔들려 버리는데, 죽어도 먹다가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 못 들어 봤어요? 지진이라는 것은 사람 힘으로는 어떻게 못하는 것이니까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한다. 어디 땅이 흔들리는 지진만 그렇겠습니까?내 마음 속에서, 내 감정과 내 의식 세계에서 막 흔들릴 때 중심을 잡고 자기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스릴 수 있는 힘이 그 사람의 내면세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안이 딱 중심을 잡고 있고, 안이 깨끗하고, 안이 내용을 갖추어야 되는데, 탐욕과 방탕에 찬 외부의 도전에 쉽게 흔들려서 항상 불안하고 조급하기마련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조그만 일에도 놀라버리고, 또 작은 것을 크게 보고 허둥지둥합니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은 정신세계 즉 내면세계입니다.
마음을 모으고 집중해서 자기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서 거기서 하나님 말씀을 새김질하면서 영감과 감동과 깨달음을 얻고 영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 영혼이 소생함을 얻고 위로와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통해서 사람이 중심이 잡히고 영혼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자기 세계를 착실하게 다져가고 세워 가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식이 그 사람의 생각이 되고 정신이되며 성품이 되고 인격이 되어서
생활의 생기가 되고 향기가 되기까지 온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묵상과 생활이 따라 주어야 합니다.
주위가 너무 산만하고 너무 관계하는 것이 많고 하다보면 일관되게 자기 자신의 생각을 계속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세계문명사에서 “전기”가 발명된 뒤로 천재가 없어졌다고 그럽니다. 셰익스피어다, 베토벤이다, 미켈란젤로 다하는 정신문화세계의 큰 거장들은 전기가 발명되기 전의 인물들이지, 전기가 나와 가지고 밤에도 불 켜고, 텔레비전, 핸드폰, 인터넷이 나오는 이 시대에는 천재가 가지는 집중력, 직관, 통찰력, 지속적인 자기성찰이 안되기 때문에 문명이 천박해지고 너무나 즉흥적이고 깊이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크리스천들은 달라야 합니다. 묵상과 기도와 자기훈련을 통해서 자기 내면세계를 닦아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설거지 하면서도 생각을 깊게 하십시오. 기도라는 것은 꼭 눈감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까지만 해도 기도는 눈 뜨고 했습니다. 그 뒤로, 하도 욕심이 많아지고 보이는 것이 많아지니까 눈 감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건의 훈련과 묵상의 훈련을 통해서 자기 내면세계를 갖추고 나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아무리 요란 떨고 복잡해도 이 내면세계가 충실하게 다져져서, 안에서 꽉 채워진 것이 밖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 창 1:31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의 모습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로서는 주신 복을 누리며 사는 삶이 바른 삶이요, 영적인 삶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권리를 주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감동적인 복을 이미 주셨다그런데 우리들이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아간다면 그런 삶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이냐가 문제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산다고 말할 때에 그 행복의 기준이 무엇이냐가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행복의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다.각자의 가치관내지 인생관에 따라 행복의 기준이 달라지겠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건인데 사람에 따라서 전혀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이다그렇다면 크리스챤들에게 있어 행복의 기준을 결정하는 가치관은 어떤 가치관이어야 할까? 바로 성경에 기초를 둔 가치관일 수 밖에 없다. 우리들에게는 성경을 벗어난 가치관은 허용될 수 없다. 그런 가치관은 겉보기에는 아무리 그럴듯할지라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 바른 가치관일 수가 없다. 저는 성경에 바탕을 둔 행복에 관한 바른 가치관으로 다섯 가지를 들고 싶다.
첫째는 우리들의 정신세계의 내면內面 곧 속 사람을 소중히 하는 가치관이다.
마태복음 23장 26절 말씀에 의하면 안을 깨끗이 하면 겉은 뒤따라 깨끗하게 된다. 우리들에게는 「안」이 중요하다. 오늘의 세계는 너무나 「겉」에 치우치고 있다. 사람들의 가치관 내지 문화의 흐름이 겉치레에 매여 있어 「속 사람」을 가꾸는 일에 너무나 소홀하다. 우리는 속 사람을 알차게 다져 그 결과로 겉 사람도 부요하여 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삶이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첫 출발이 된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속 사람 안입니다. 그 사람의 내면 세계입니다 그 사람의 영혼입니다. 그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생각의 질에서 결정된다. 구약 성경의 잠언서는 사람에게 지혜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없다는 것을 누누이 반복해서 여러 가지말로 강조하고 있다지혜가, 생각이 그 사람 속에서 내면화되고 습관화되고 체질화되어서그 사람의 인격이 되고 성품과 인품이 되는 과정에서 그 열매로 행복을열리는 것이다. 앞뒤도 없이 행복해지려고 아둥바둥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해 질 수 있는 조건을 지키며 착실하게 내실을 기하면서 속이 꽉 차도록 살다보면행복은 열매로 맺어지는 겁니다.
사람의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합니다. 속은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겉은 회칠한 무덤같이 하얗게 깨끗하게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마 23:28
마23장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종교와 그 제도, 문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기득권은 다 챙기고 욕심부리고 다 누리면서도 정말로 생명 그 자체요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은 없고 사람 앞에 보일려고 하는 위선과 거짓을 통렬하게 꾸짖으시는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이나 할례나 십일조문제는 율법과 신앙을 담보하는 그릇입니다. 이것이 깨지면 그 안에 있는 내용물들은 다 쏟아져 버리는 것이고 사회라는 판이 깨지는 것이다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세부 조항들이나아주 중요한 제도적 문제이거나, 시스템의 문제이거나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거나 무시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그러나「율법의 더 중한바」 더 중심적이거나 더 결정적인 일율법의 핵심. 그 정신 혼. 율법의 생명. 이것을 담아내기 위해서 세부항목이 있고 여러 가지 규정과 제도 있는데 본질적인 것은 내용은 다 빠져 버리고 빈 껍데기를 붙들고 자신들의 일신상의 이득과 안일만 챙기고 그렇게 하면서 백성들까지 눈을 멀게 만드는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 율법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중요한 세 단어를 말씀하셨습니다1. 義 옳음......떳떳함 당당함 자유2. 仁 어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정말 마음을 다해서 신실하고 공경하는 마음 사람에 대해서는 어질고 착하고 관용하고 너그러운 성품. 인품3. 信. 신의.........신뢰 믿음 육신이 두 쪽이 나도 한 번 약속한 것은 지키는 진실함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그렇게 믿고 자기 진실을 지키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끝없는 신뢰를 보내는 것
우리는 정신적인 내면의 세계를 충실히 해야 됩니다. 율법과 은혜의 대립각을 세우면서 구원을 논하기 전에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이요 기초입니다. 사람이 가져야할 기본 정신입니다. 이 기본이 충실해야죄인, 의롭다함을 받는 것.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고 예수님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말이 가지는 그 신비 놀라움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시대는 너무 변화가 많고 빠르고 너무 요란 떠는 시대입니다. 자기 속이 딱 알차게 차 있지 못한 사람은 자꾸 세상 물결 따라, 유행 따라,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라서 흔들립니다. 자기의 영적인, 정신적인, 정서적인 내면세계가 확실하게 서있지 못하면살아갈 때 부딪히는 시련이나 재난에 대해서 바로 대처하지를 못하고불안하고 허둥지둥합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알라스카에 갔을 때 집회가 끝나고 성도들과 식당에서 식사하는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진도 7.9도니까 아주 큰 지진입니다. 그리고 시간도 길어서 보통 지진보다 3-4배 가량 아주 길게 땅이 흔들렸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니까, 같이 식사하던 분들이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갔으나그 분은 그냥 계속해서 식사했습니다. 지진이 와서 땅이 흔들리는데 밖으로 뛴다고 어디로 갑니까? 그런데 지진 끝난 뒤에 같이 식사하던 성도들이 하는 말이 한국은 지진이 없어서 목사님이 몰라서 태연하다고 해요. 목사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내가 무식해서 용감한 점도 있겠지만 도망가면 어딜 가요? 땅이 흔들려 버리는데, 죽어도 먹다가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 못 들어 봤어요? 지진이라는 것은 사람 힘으로는 어떻게 못하는 것이니까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한다. 어디 땅이 흔들리는 지진만 그렇겠습니까?내 마음 속에서, 내 감정과 내 의식 세계에서 막 흔들릴 때 중심을 잡고 자기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스릴 수 있는 힘이 그 사람의 내면세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안이 딱 중심을 잡고 있고, 안이 깨끗하고, 안이 내용을 갖추어야 되는데, 탐욕과 방탕에 찬 외부의 도전에 쉽게 흔들려서 항상 불안하고 조급하기마련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조그만 일에도 놀라버리고, 또 작은 것을 크게 보고 허둥지둥합니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은 정신세계 즉 내면세계입니다.
마음을 모으고 집중해서 자기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서 거기서 하나님 말씀을 새김질하면서 영감과 감동과 깨달음을 얻고 영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 영혼이 소생함을 얻고 위로와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통해서 사람이 중심이 잡히고 영혼이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자기 세계를 착실하게 다져가고 세워 가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식이 그 사람의 생각이 되고 정신이되며 성품이 되고 인격이 되어서
생활의 생기가 되고 향기가 되기까지 온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묵상과 생활이 따라 주어야 합니다.
주위가 너무 산만하고 너무 관계하는 것이 많고 하다보면 일관되게 자기 자신의 생각을 계속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세계문명사에서 “전기”가 발명된 뒤로 천재가 없어졌다고 그럽니다. 셰익스피어다, 베토벤이다, 미켈란젤로 다하는 정신문화세계의 큰 거장들은 전기가 발명되기 전의 인물들이지, 전기가 나와 가지고 밤에도 불 켜고, 텔레비전, 핸드폰, 인터넷이 나오는 이 시대에는 천재가 가지는 집중력, 직관, 통찰력, 지속적인 자기성찰이 안되기 때문에 문명이 천박해지고 너무나 즉흥적이고 깊이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크리스천들은 달라야 합니다. 묵상과 기도와 자기훈련을 통해서 자기 내면세계를 닦아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설거지 하면서도 생각을 깊게 하십시오. 기도라는 것은 꼭 눈감아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까지만 해도 기도는 눈 뜨고 했습니다. 그 뒤로, 하도 욕심이 많아지고 보이는 것이 많아지니까 눈 감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건의 훈련과 묵상의 훈련을 통해서 자기 내면세계를 갖추고 나아가야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아무리 요란 떨고 복잡해도 이 내면세계가 충실하게 다져져서, 안에서 꽉 채워진 것이 밖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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