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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兄 이야기---더럽혀진 자신을 넘어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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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3-06-11 21:33 조회2,8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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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兄 이야기---더럽혀진 자신을 넘어서서



사람들이 형네 집을 지칭할 때,
“아들 둘 죽은 집”이라 불렀다는 얘기는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이웃 사람들이 형을 가리켜 “며느리와 붙어먹은 상종 못할 놈”이라
수군거렸다는 이야기에 비한다면.
평생을 형이 그런 수군거림에 시달렸을 것이란 생각을 떠올리면서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서 형님이 얼마나 자주 자살 충동을 받았을까를 생각할 때면,
또 눈물이 났다.
목숨을 부지하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가 나오던지......
그렇지만 그게 형이 잃은 전부였을까.....

더 잃을 것이 없을 정도로 상실했지만, 그러나 그게 형의 끝은 아니었다.
끝이라니?
그렇지 않다, 결코!
형은 며느리와의 그 일이 있고 난 후부터 가치 있는 것을 얻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귀중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그분으로부터 모든 과거의 허물을 기억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얻어(?)냈다.
하나님으로부터의 그 용서가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이 박힌
형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까지 씻어준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들이 퍼붓는 야유와 비난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리하여 비난과 치욕은 일생 동안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형이 얻은 것은 그뿐이 아니다.

형은 집으로 돌아 온 이후 불과 1년 사이에 명실상부한 실질적 장남이요,
우리 형제들의 리더로 추대된다.
그렇다.
그것은 ‘추대’였다.
그 수치스러운 과거에도 불구하고 형이 아버지나 형님들에게
장남이 되겠다거나, 장남으로 써달라고 부탁하지는 못했을 것이 아닌가.
강요란 더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고.
그런데도 유다형의 지도력에 형님들이 기꺼이 따랐다면,
그게 형님들의 자발적인 추대가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사실 나는 집으로 돌아온 형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리진 행동으로
가족들을 감동시켰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충분히 알 것 같다.
그런 전력을 가지고도 모두가 기꺼이 따르는 지도자가 되었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저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형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를 잠시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내 생각은 자꾸 곁길로 빠져든다.
처음엔 분명 유다형으로 시작하는데,
나중에 보면 하나님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나님이 유다 형의 얼굴 위에 자꾸 포개지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용서와 신뢰가 아니었다면,
더군다나 형과 형이 낳은 혼혈아 베레스를 통해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이 없었다면
어떻게 형이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겠는가.
그 수모 앞에서 어떻게 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또한 그런 전력을 갖고도 어떻게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열심을 낼 수 있었겠는가.
때문에 나는 유다 형의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께 나를 걸고자 한다.
그분께 소망을 두고자 한다.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역사 속의 하나님.
섭리하시는 하나님,
영원히 영광 받으소서. 할렐루야!












지유철의 “요셉의 회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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