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신앙

10.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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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4-04-03 13:57 조회3,0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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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앞에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사실 설명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어떤 거래로 생각한다면

무슨 계산이란 것 자체가 황당한 것이다
바둑에 불계승이란 말이 있다 수치로 계산해서 승부를 가리거나
셈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99마리 양을 놔두고 1마리 양을 찾으러 나서거나 찾았다고 잔치하는 것은
도대체가 무슨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마리아라는 한 여자가 외국산 향유 0.5리터를-1년치 임금에 해당-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은 너무도 황당한 낭비다
눈꼽만큼의 한 방울로도 소기의 목적을 이루수 있는데
어쩌자고 더러운 마루 바닥에 철철 흐르도록 퍼붓는가
말이다.
그것이 무슨 굉장한 이야기라고
복음과 함께 이 여자의 이야기도 꼭 전하라고 하신다.
그렇게도 중요한 감동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과부의 동전 두 닢을 부자들의 고액 헌금과 비교할 수 있는가 ?
그것도 고액 헌금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시면서...................
아침 새벽 이른 6시부터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하루 종일 놀다가 해거름 판에 와서
겨우 1시간도 채 일하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품삯을 같이 줄 수 있는가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인간의 논리나 기준, 계산하고는
도저히 짜 맞출 수 있는 연결고리가 전혀 없다.

아마데우스(Amadeus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려 애쓴 17세기의 한 작곡자를 다룬 연극이다.
독실한 신자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불후의 찬미곡을 만들려는
간절한 열망을 품고 있지만 재능이 따라
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서 최고의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아직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개구쟁이 소년에게 부어주신다.
그의 이름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이다.
살리에리는 이 사실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아마데우스의 작가는 하나님이 그렇게도 신실한 살리에리를 제쳐두고
자격 미달인 애숭이한테 「상주시는」까닭을 묻고 있다.
욥기의 저자는 당대의 최고의 의인이었던
욥을 「벌 주시는」 까닭을 놓고 고민을 한다
간음과 살인과 거짓의 불륜 관계의 여인을 통해서 얻은 아들인
솔로몬에게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지혜를 부어주시는지....
왜 그토록 성실한 에서는 버려지고 야곱은 택함을 받는지....

은혜란 수혜자들에게는 어떤 말로도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유명하다면 그의 손자 야곱은
속임수로 유명합니다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난 야곱은
한 손으로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모는 그에게 「발뒤꿈치를 붙잡는 자」
또는 「속이는 자」라는 뜻인 야곱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고대에는 장남에게 두 가지 큰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장자 권과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권리였습니다
장자 권이란 아버지의 재산을 다른 형제보다 두 배로 상속받으며
가장의 지위를 승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야곱은 형이 사냥을 갖다 돌아와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를 이용해
팥죽 한 그릇으로 협상을 해서 바로 이 장자 권을 넘겨받았습니다- 창25장

한 편 고대인들은 아버지가 베푸는 축복이
자자손손에게 번영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축복은 자손의 번영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장차 제사장 나라를 이루게 되리라는 복을 그 아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7장에는 그 거룩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는데
야곱이 행한 교묘한 속임수가 기록된 것입니다.
그는 본래 형 에서에게 돌아갈 복을 빼앗기 위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둡고 정신이 혼미해진 아버지를 속인 것입니다.
우리는 동생에게 속아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빼앗긴 에서에게
동정심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야성미와 인간성에
매력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야곱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그의 장자 권을 하찮게 여겼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 창25:34, 히12:16,

크나큰 축복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야비한
술수를 쓴 야곱은
아마도 도덕적인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야곱의 속임수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훗날 자기가 저지른 속임수의 댓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이러한 행동과 삶은
우리에게 한가지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는 사람은
그가 인간적으로
아무리 결점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상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이야기는
오늘날
죄와 허물 많은 우리에게도 많은 소망을 안겨 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윤리보다 믿음이 더 유효합니다
그것이 마음에 안듭니까? 비윤리적으로 보입니까?
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어느 누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에
윤리 도덕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까
감히 누가 자기 의로서 다름 사람의 의를 판단 할 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신비입니다
그렇게도 쉬운 것인데도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면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 혜 앞에 설 때에야 비로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 놓게 됩니다
모든 판단과 시비를 그치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 십자가 -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말이 아닙니다
인간의 그 잘남도 아닙니다.
길이 없고 대책이 없는 인간입니다.
은혜밖에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말과 행동의 기준은 하나입니다
은혜입니다.
이 말에
이 행동에 은혜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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