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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품삯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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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4-04-09 14:02 조회2,9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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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품삯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 중 자기 공로대로 받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한 삶 근처에라도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평한 하나님의 저울에 올려지면 하나 같이
바벨론의 벨사살 왕처럼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즐기던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 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힌지라』
- 단 5:6

세상이 계산 장부로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예수님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받았을 것입니다.
은혜는 세간에 통하는 회계원리로 격하될 수가 없습니다
계산 일색의 비은혜
세계에는 자격에서 남다르게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의 세계에는 자격이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인간은 만사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자신의 시야를 벗어나 저편에 눈부신 빛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만은

예외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자기 밭에 서울, 경기를 다 사고도 남을 보화가 묻혀 있는데도
그것이 암소 발
뿌리에 채여서 드러나기 전에는
평생 등이 휘도록 그 밭만 갈고 살아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산수에 남다르게 뛰어나 회계에 뽑혔던 유다는
숫자에 밝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베드로는 또 뭔가?.
아직도 그물에서 퍼덕거리는 고기 떼를 어떻게 153마리라고
세어볼 엄두를 냈는지 나로서는 기가 막힐 뿐이다.
이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에도 무슨 산수 같은 공식이 있을까 묻는 것을 보면
성미가 급한 것과는 달리
또 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꼼꼼하고 철저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
당시의 랍비들은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용서의 횟수를 최대 세 번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베드로 딴에는 아주 파격적인 관용을 보인 것이다
예수님은 즉각 답변하셨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 !
예수님의 답변은 한마디로 계산기 두드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태산같은 빚을 이미 탕감해주었는데
개미집 같은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을 못 갚은다고
닦달하다 못해 친구를
옥에 가둔다는 말인가?
☞. 마18:28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먼저 그렇게 용서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보거든.........
내가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보거든..............
그 사람이 바로 『 예수님 앞에서 나』라는 것을 기억하며 .......
계산할 머리가 없는 바보였으면 싶다.
그냥 은혜만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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