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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쥐가 고양이에게 은혜를 베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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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4-06-19 22:47 조회3,2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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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쥐가 고양이에게 은혜를 베풀다



1. 피해자에게만이 용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죄를 지은 가해자에게도 용서가 필요하다


죄인이 죄를 토설치 아니할 때 격는 고통을
성경은 아주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
시 32:3-4

죄에 대한 아픔의 감각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다
사람의 명예를 우리는 다른 데서 찾지 않는다
그 사람의 지식이나 소유나 지위에서가 아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여부에 따라
그 사람의 사람됨의 기초가 세워지는 것이다

"하나님 !
바울에게 주신 은혜도 말고
베드로에게 베푸신 그 사랑도 말고
저에게는 우편 강도에게 허락하셨던 그 용서만을 주시옵소서"
코페르니쿠스가 스스로 만든 자기 비문입니다
자신이 죄인 것말고 다른 무엇으로 자신을 가리울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 3:7

다른 사람이 아는 『나』가 아니다
내가 아는 『나』도 아니다
하나님이 아시는 『나』를 보기 시작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마디가 『 하나님 ! 용서해주세요』
사람이 자기 인생을 다 살고 가면서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나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이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이 아닐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낄 때 사람은 가장 건강하고 정상적이다
그것이 사람의 기본 자세이다. 마음의 평안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천국은 회개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하물며 살아가면서 지은 명백한 죄를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고 숨기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
1957년 다른 단원들과 함께 어느 흑인 트럭 운전자를 끌어내서
급류가 흐르는 다리 위에서 떨어뜨려 죽인 사람이 있었다
1976년 그는 그 죄로 기소되었다
그를 법정에 세우려는 데만 거의 20년이 걸렸다
그러나 법정에서도 결국은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는 그의 아내에게도 결백을 주장했다. 조금도 후회하는 빛이 없었다
그러나 1993년 그동안 36년 간의
거짓을 품고 그대로 죽을 수가 없었다
그 죄책감을 무덤까지 끌고 가기에는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진상을 털어놨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죽었다
"날 위해 뭐라고 기도해야할지 모르겠소.
하나님이 날 위해 무슨 계획을 품고 계신지 모르겠오"


2. 자기 죄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도 용서는 필요한가? 그렇다.


자기 죄를 알지 못하는 자에게도 ,
알고도 인정하지 않는 그 사람에게도........
용서는 누구를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지금 당장의 열매만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아직』- not yet- 죄인이고,
『아직』- not yet- 원수였을 때
주님은 나를 대신해서 죽어주시기까지 사랑해주셨습니다
자기가 무슨 죄를 지은 지도 알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있는 그 현장에서
주님은 저들을 용서하시고 죽으셨습니다.

神父는 장발장을 그렇게 용서했고
장발장도 20년을 매몰차게 쫓아다녔던 정의밖에 모르는
형사 자베르의 목숨을 건져줍니다
쥐가 고양이에게 은혜를 베푸는 셈입니다
자신의 본능에 역류하는 은혜 앞에 속수 무책인 데다가
자기 안에 그에 상응하는 은혜나 용서가 없는 것을 안 자베르 형사는
세느강에 자신의 몸을 던집니다.

어둠이 빛을 견디지 못하는 장면-Scene입니다

용서는 법과 정의를 넘어서는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모든 논리와 말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지식이나 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참으로 어설프고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들 머리로 『다른』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상이나 철학도 아니요 논리도 아닙니다.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샘솟는 『하나님의 사실』입니다
그냥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뿐입니다 -롬 1:16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알게 하십니다
그냥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3. 사람은 누구나 죄인 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서로의 용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사람이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정직하지도 않고 너그럽지도 않습니다
사랑스럽고 용기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사실은 그 정반대가 진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손을 잡고? 세 번에 걸친
『容恕 儀式』을 행하시는 모습이 교회가 세워지는 자리- 반석입니다
우리는 셀 수 없이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고 살아갑니다.
주님 앞에 설 때마다 가장 듣고 싶은 말씀입니다.
자신의 허물과 죄로 그렇게도 자신 없어하는 베드로를
찾아가서 붙잡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 네가 나를 사랑하지?』
그렇지!
베드로 !

베드로 !
『 네가 나를 사랑하지?』
그렇지 !

그렇지 !
『 네가 나를 사랑하지?』
베드로 !

그렇게 하심으로 베드로를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며 세우십니다.
교회의 인도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 요 21:17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한 모든 장벽을 제거하시고 하나되시며
모든 더러움을 씻기시고 하나님의 얼굴을 회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심판을 거두시고 아버지로 우리를 품으시는 것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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