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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한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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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4-07-19 23:14 조회3,1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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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한 바보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라는 구절은 바울이 고린도에 보낸 편지에 나오는데,
그 말은 사도가 깊은 아이러니를 느끼며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내용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랜 된 것이다.
다윗 왕은 기쁨이 충만하여 여호와 앞에서 옷이 흘러내리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춤을 추다가 자기 아내에게 바보 취급을 당했다.
많은 선지자들도
어떤 시각에서는 미친 짓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이사야는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돌아다녀야 했고,
예레미야는 목에 나무로 만든 멍에를 건 채 한 세대 동안
웃음거리가 되어야 했으며,
에스겔은 공중 앞에서 배설물을 먹어야 했고,
호세아는 창녀와 결혼해야 했다.

바울이 사용한 바보(fool)라는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저능아(moron)라는 단어의 기원이다.
소포클레스가 안티곤(Antigone)의 미친 상태를 일컬을 때
이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심히 모욕적인 언사이다.
사실 아테네의 지식인들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로마 총독 베스도는 사도 바울을 그렇게 미치광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모든 예는 성경에서 가장 으뜸가는 바보처럼 비추어진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자기 가족에게 미치광이로 여겨져 버림받았으며,
결국에는 로마 친위대 앞에 선 채 조롱거리가 되셨다.
세상의 죄를 짊어지기에 앞서 그분은 세상의 어리석음을 짊어지신다.
예수님은 홍포와 가시 면류관과 갈대 홀로 치장된 채,
고의적으로 바보 같은 왕의 모습을 한 조롱받는 왕이 된다.
그러므로 수없이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Ignatius of Loyola의 말을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그분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바보로 취급받기를 원해야 하고,

그분의 옷을 입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한다”...

바보처럼 되는 것이 소명에 필수적인 이유는
그것이 예수님과 동일시되는 데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아를 부정하고 그분을 좇아 십자가를 지며
그분의 召命-부르심에 순종하는 값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사람을 부르실 때

그 분은 그 사람에게 와서 죽으라(come and die)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1937년 나를 따르라(The Cost of Discipleship)에서
본 훼퍼가 쓴 이 말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신학적인 문장일 것이다.
그는 히틀러에 저항하는 가운데 자신의 피로 이 글에 친히 서명했다...

편한 시대에는 외적인 소명의 代價가 작을 수 있고
어려운 때에는 - 본회퍼의 경우와 같이 - 그 대가가 엄청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는 그리스도를 위한 바보가 되도록 부름 받았지만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어리석게 되도록 요청 받았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지 내적인 대가는 항상 동일하다. 즉 자아를 죽이는 것이다.


요즘은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적(敵)은 세상이나 마귀가 아니라,
다름 아닌 나 자신 즉 자아(自我)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때때로 하나님보다 앞서 가려는 욕망,
하나님보다 자신에게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주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합니다.
자기 부정을 위한 투쟁...
아마 주님이 오실 때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이미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은 성도의 영적 지위를 믿으며,
부족하지만 오늘도 주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Come and Die !

오스 기니스, 소명 - IVP,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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