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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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0-03-14 20:35 조회3,2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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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침묵 마가복음1:12-13
예수님께서 공식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시면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시는 내용이 마태 마가 누가 3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 40일 금식 』. 『 광야 시험 』이렇게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으로 기억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직후 바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리고 바로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먹으라는 시험이 이어지기 때문에
40일 금식 이런 이야기들은 많이 들어보았습니다만 40일의 침묵은 들어본 일이 없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금식이나 마귀와의 싸움은 아주 익숙하지만 침묵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익숙한 단어가 아닙니다. 광야라는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혼자 40일간을 지낸다는 것은 침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사실 말이 필요 없는 장소요 그런 시간들입니다. 말은 번거럽고 시끄러울 때가 많다.
오히려 진실을 가리고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도 예수님에게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침묵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별히 사람인 우리들에게는 아주 중요합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에 신앙생활 할 때에 침묵은 육신의 음식이나 옷보다 중요합니다
말보다는 침묵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성장하고 자라면서 저는 침묵훈련이라는 말은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기도와 찬양과 전도 수많은 성경공부는 있지만....
여러분들에게는 침묵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직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이 40일간의 침묵뿐만 아니라잡히시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실 때의 모습 중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말 없이 홀로 자기 길을 걸어가십니다.
눅23: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 가야바. 빌라도, 헤롯 그리고 군중들이 소리 소리를 질러도 주님은 별 말이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기간동안에도 아침 일찍 그리고 어둠이 깔리면 혼자 계시는 시간들이 많으신 것을 보게 됩니다. 막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 요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를 보면 그 사람과 장래를 볼 수 있다
요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요2:2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예수님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시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아낄 줄 알고 말을 담아두고 숙성시킬 줄 알고
때와 장소와 사람을 따라서 필요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말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말로 이김질 하고 말로 자신을 선전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걸러지지 않고 정제되지 않는 말이나 감정들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독이 됩니다
말은 번거럽고 시끄러울 때가 많다. 오해를 해도 힘들고 이해한다는 말도 진실이 결여되면 빈말이어서 공허합니다 말은 사실 생각과 마음의 표현인데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읽어내고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즐거운 관계가 더 없이 좋은 관계입니다. 말보다는 마음의 창인 눈빛이 더 진실에 가깝게 서로를 전달할 수 있다. 사람의 얼굴이란 그 속 사람의 표지가 됩니다. 말. 눈. 얼굴 이는 다 그 사람의 영혼을 담아내고 표현하는 창이요 그릇이고 포장지다
무엇을 생각함인지 초점을 잃고 몽롱하게 흐려져 있는 눈
출세를 위해서 약사빠르게 처신하느라 흘기는 것이 익숙해진 곁눈질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면 눈길 한 번 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냉정한 눈
앉아있는 자기 자리가 불편해서 인지 늘 불안하고 초조한 눈빛
자기 뜻에 거슬리면 잡아먹을 듯 살기등등한 무서운 눈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하고 거드름피우는 대하기가 아주 불편해지는 눈빛
억울하고 황당한 일을 당하고도 어디 호소할 데가 없어서
분노와 무기력을 참지 못해하는 서러운 사람들의 눈망울
절망을 넘어서 또 절망밖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듯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구고 땅만 바라보는 힘 없는 눈우리들을 슬프게하고 힘들게하는 눈들이다
실컷 부려먹다가 이제는 죄도 없이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의 가엾은 그 큰 눈망울
고기 없이는 밥을 못 먹겠다는 사람들. 나만 맛있게 잘 먹으면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 그들의 눈 빛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한 없이 초라하게 만듭니다
자기 육신을 꾸미는 데만 마음이 다 가있는 현대 여성들
조용히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자신의 뜨락을 가꾸고 자신을 절제하고 다스릴 줄 알고, 정리되고 처리된 자아를
관리할 줄 아는 여인들의 깊은 눈은 남편에게 도전과 자극이 됩니다
☞. 딤전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벧전3: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벧전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예수님의 침묵은
1.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서....인기나 평판, 비난 비판으로부터 자신으로 돌아옴
자기 관리란 것은 시간 관리가 아니다. 스케줄 관리가 아니다. 마음 관리.
2.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읽어내는 자기 성찰. 자기 관조
자기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 숨은 동기나 사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 읽는 것. 남이 보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 자신을 본다
3. 자기 감정 분노 억울함 불안 고집 탐욕 편견 무지를 걷어내야 합니다
교만도 열등감도 버리고 한 점 티끌과 먼지로 돌아와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기위해서 했던, 과시하기위해서 했던
알고도 했던 모르고 했던 모든 거짓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진실하지 못하면 진리는 없습니다
죄인으로서 한 사람의 진실을 보지 못하면 그 다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죄가 정리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안식과 평안. 깨달음 진리...거짓이다.
4. 자기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 경청
오직 완전한 침묵 속에서만 우리는 듣기 시작한다.
언어가 잦아들 때만이 우리는 보기 시작 한다
육신이 말하는 소리는 그리도 잘 듣지만
자기 영혼의 소리를 듣는 데는 아주 무감각하기 쉽다.
혼적인 욕구도 있고 더 깊은 영적인 음성도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오는 소리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 사람들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오는 소리. 자연을 통해서 암시하고 말씀하시는 메시지
『소리 없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말 이전의 진실을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5.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침묵할 때에. 혼자 있는 시간에
마태 마가 누가 3복음서는 주로 사건 중심의 기록들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은 사건 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 즉 예수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내면 세계를, 그 시스템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복음서를 막론하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예수님이 얼마나 자주 일마다 때마다 아버지를 부르시는 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요5:1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8:28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혼자 있는 시간은 그냥 침묵의 시간. 텅빈 시간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충만한 시간.
기도할 때나 선한 일을 할 때나 무슨 일이든지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6
자신으로 돌아와서 자신을 읽어내고 모든 거짓과 탐욕을 걷어내고
자신의 내면 세계로부터 들려오는 음성들을 들으면서 (긍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현실을 가까이서 세밀하게 또 멀리 영원한 미래에까지 비추어보고, 언제 무엇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선택하고 결정하고 Confirm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새김질. 담금질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말에 힘이 있고 권세가 있습니다.
믿음과 확신. 자신감. 당당함. 여유와 넉넉함 관대함 같은 성품들이 생기는 것이다
☞.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님께서 말 없이 혼자 침묵하시면서 주변을 들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시면서 자기 길을 걸어가시는 모습을 수 없이 볼 수 있습니다
①. 나사렛 회당에서 거절당하시고 배척받으시면서
②. 안식일 날 밀 이삭 잘라먹었다고, " 병고쳤다고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
③. 제자들끼리 누가 더 크냐하는 문제로 다툴 때에.
누가 오른 편 누가 왼편에 앉을까 하는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④. 자신을 따라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⑤. 잃은 양 찾으러 가시는 목자.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 이야기하실 때
⑥. 좁은 문으로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실 때
⑦.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지고 부모나 처자식 자기 목숨까지라도 버리지 않으면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언제나 혼자 외롭게 침묵하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전하시는 것입니다.
⑧.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
백성들을 보시면서 목자 없는 양같이 민망히 여기시는 모습
⑨.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시면서 십자가로 향하시는 예수님
내가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하면 다 되는 것처럼,
내가 무슨 대단한 영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기 성취감이나 자기 우월감에 퍼득거리지 않는 절제된 자기 질서를 가져야 합니다.
저 쪽에서 오른 뺨을 쳤다면 그 다음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은 내 문제
누가 나에게 어떻게 하든 내가 어떻게 하는가는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할 문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칼은 칼로 응답할 수도 있겠고
감정의 악순환 속에서 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도 자기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서 자기 인생이, 자기 미래가 결정됩니다.
내 능력으로 상대방을 나의 종으로 만들 수는 없는데,
사랑은 내가 빼앗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먼저 스스로 저쪽의 사랑의 종이 되려는 것은 가능하다.
용서 문제에서도 저쪽에게 나를 용서하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가 저쪽을 용서하는 일과,
내 잘못을 저쪽에게 용서 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존경 문제도 저쪽이 나를 존경하게 만들 수는 없는데
내가 저쪽을 존경할 수는 있고요.
대접도 저쪽에게 나의 공로를 알아 나를 대접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인데......
그러나 내가 먼저 대접할 수는 있다.
내가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면 된다.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에 상관하지 않고 상황이나 여건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침묵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서 그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행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께서 공식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시면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시는 내용이 마태 마가 누가 3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 40일 금식 』. 『 광야 시험 』이렇게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으로 기억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직후 바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리고 바로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먹으라는 시험이 이어지기 때문에
40일 금식 이런 이야기들은 많이 들어보았습니다만 40일의 침묵은 들어본 일이 없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금식이나 마귀와의 싸움은 아주 익숙하지만 침묵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익숙한 단어가 아닙니다. 광야라는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혼자 40일간을 지낸다는 것은 침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사실 말이 필요 없는 장소요 그런 시간들입니다. 말은 번거럽고 시끄러울 때가 많다.
오히려 진실을 가리고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도 예수님에게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침묵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별히 사람인 우리들에게는 아주 중요합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에 신앙생활 할 때에 침묵은 육신의 음식이나 옷보다 중요합니다
말보다는 침묵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성장하고 자라면서 저는 침묵훈련이라는 말은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기도와 찬양과 전도 수많은 성경공부는 있지만....
여러분들에게는 침묵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직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이 40일간의 침묵뿐만 아니라잡히시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실 때의 모습 중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말 없이 홀로 자기 길을 걸어가십니다.
눅23: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 가야바. 빌라도, 헤롯 그리고 군중들이 소리 소리를 질러도 주님은 별 말이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기간동안에도 아침 일찍 그리고 어둠이 깔리면 혼자 계시는 시간들이 많으신 것을 보게 됩니다. 막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 요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를 보면 그 사람과 장래를 볼 수 있다
요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요2:2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예수님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사람들의 지지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져도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시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아낄 줄 알고 말을 담아두고 숙성시킬 줄 알고
때와 장소와 사람을 따라서 필요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말로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말로 이김질 하고 말로 자신을 선전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걸러지지 않고 정제되지 않는 말이나 감정들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독이 됩니다
말은 번거럽고 시끄러울 때가 많다. 오해를 해도 힘들고 이해한다는 말도 진실이 결여되면 빈말이어서 공허합니다 말은 사실 생각과 마음의 표현인데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읽어내고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즐거운 관계가 더 없이 좋은 관계입니다. 말보다는 마음의 창인 눈빛이 더 진실에 가깝게 서로를 전달할 수 있다. 사람의 얼굴이란 그 속 사람의 표지가 됩니다. 말. 눈. 얼굴 이는 다 그 사람의 영혼을 담아내고 표현하는 창이요 그릇이고 포장지다
무엇을 생각함인지 초점을 잃고 몽롱하게 흐려져 있는 눈
출세를 위해서 약사빠르게 처신하느라 흘기는 것이 익숙해진 곁눈질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면 눈길 한 번 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냉정한 눈
앉아있는 자기 자리가 불편해서 인지 늘 불안하고 초조한 눈빛
자기 뜻에 거슬리면 잡아먹을 듯 살기등등한 무서운 눈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하고 거드름피우는 대하기가 아주 불편해지는 눈빛
억울하고 황당한 일을 당하고도 어디 호소할 데가 없어서
분노와 무기력을 참지 못해하는 서러운 사람들의 눈망울
절망을 넘어서 또 절망밖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듯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구고 땅만 바라보는 힘 없는 눈우리들을 슬프게하고 힘들게하는 눈들이다
실컷 부려먹다가 이제는 죄도 없이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의 가엾은 그 큰 눈망울
고기 없이는 밥을 못 먹겠다는 사람들. 나만 맛있게 잘 먹으면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 그들의 눈 빛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한 없이 초라하게 만듭니다
자기 육신을 꾸미는 데만 마음이 다 가있는 현대 여성들
조용히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자신의 뜨락을 가꾸고 자신을 절제하고 다스릴 줄 알고, 정리되고 처리된 자아를
관리할 줄 아는 여인들의 깊은 눈은 남편에게 도전과 자극이 됩니다
☞. 딤전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벧전3: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벧전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예수님의 침묵은
1.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서....인기나 평판, 비난 비판으로부터 자신으로 돌아옴
자기 관리란 것은 시간 관리가 아니다. 스케줄 관리가 아니다. 마음 관리.
2.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읽어내는 자기 성찰. 자기 관조
자기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 숨은 동기나 사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 읽는 것. 남이 보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 자신을 본다
3. 자기 감정 분노 억울함 불안 고집 탐욕 편견 무지를 걷어내야 합니다
교만도 열등감도 버리고 한 점 티끌과 먼지로 돌아와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기위해서 했던, 과시하기위해서 했던
알고도 했던 모르고 했던 모든 거짓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진실하지 못하면 진리는 없습니다
죄인으로서 한 사람의 진실을 보지 못하면 그 다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죄가 정리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안식과 평안. 깨달음 진리...거짓이다.
4. 자기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 경청
오직 완전한 침묵 속에서만 우리는 듣기 시작한다.
언어가 잦아들 때만이 우리는 보기 시작 한다
육신이 말하는 소리는 그리도 잘 듣지만
자기 영혼의 소리를 듣는 데는 아주 무감각하기 쉽다.
혼적인 욕구도 있고 더 깊은 영적인 음성도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오는 소리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 사람들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오는 소리. 자연을 통해서 암시하고 말씀하시는 메시지
『소리 없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말 이전의 진실을 보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5.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침묵할 때에. 혼자 있는 시간에
마태 마가 누가 3복음서는 주로 사건 중심의 기록들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난 일들을 중심으로 기록한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은 사건 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 즉 예수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내면 세계를, 그 시스템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복음서를 막론하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예수님이 얼마나 자주 일마다 때마다 아버지를 부르시는 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요5:1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8:28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혼자 있는 시간은 그냥 침묵의 시간. 텅빈 시간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충만한 시간.
기도할 때나 선한 일을 할 때나 무슨 일이든지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6
자신으로 돌아와서 자신을 읽어내고 모든 거짓과 탐욕을 걷어내고
자신의 내면 세계로부터 들려오는 음성들을 들으면서 (긍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현실을 가까이서 세밀하게 또 멀리 영원한 미래에까지 비추어보고, 언제 무엇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를 선택하고 결정하고 Confirm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새김질. 담금질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말에 힘이 있고 권세가 있습니다.
믿음과 확신. 자신감. 당당함. 여유와 넉넉함 관대함 같은 성품들이 생기는 것이다
☞. 성경을 읽다보면 예수님께서 말 없이 혼자 침묵하시면서 주변을 들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시면서 자기 길을 걸어가시는 모습을 수 없이 볼 수 있습니다
①. 나사렛 회당에서 거절당하시고 배척받으시면서
②. 안식일 날 밀 이삭 잘라먹었다고, " 병고쳤다고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
③. 제자들끼리 누가 더 크냐하는 문제로 다툴 때에.
누가 오른 편 누가 왼편에 앉을까 하는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④. 자신을 따라오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⑤. 잃은 양 찾으러 가시는 목자.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 이야기하실 때
⑥. 좁은 문으로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실 때
⑦.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지고 부모나 처자식 자기 목숨까지라도 버리지 않으면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언제나 혼자 외롭게 침묵하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전하시는 것입니다.
⑧.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
백성들을 보시면서 목자 없는 양같이 민망히 여기시는 모습
⑨.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시면서 십자가로 향하시는 예수님
내가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하면 다 되는 것처럼,
내가 무슨 대단한 영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기 성취감이나 자기 우월감에 퍼득거리지 않는 절제된 자기 질서를 가져야 합니다.
저 쪽에서 오른 뺨을 쳤다면 그 다음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은 내 문제
누가 나에게 어떻게 하든 내가 어떻게 하는가는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할 문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칼은 칼로 응답할 수도 있겠고
감정의 악순환 속에서 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도 자기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서 자기 인생이, 자기 미래가 결정됩니다.
내 능력으로 상대방을 나의 종으로 만들 수는 없는데,
사랑은 내가 빼앗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내가 먼저 스스로 저쪽의 사랑의 종이 되려는 것은 가능하다.
용서 문제에서도 저쪽에게 나를 용서하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가 저쪽을 용서하는 일과,
내 잘못을 저쪽에게 용서 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존경 문제도 저쪽이 나를 존경하게 만들 수는 없는데
내가 저쪽을 존경할 수는 있고요.
대접도 저쪽에게 나의 공로를 알아 나를 대접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인데......
그러나 내가 먼저 대접할 수는 있다.
내가 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면 된다.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에 상관하지 않고 상황이나 여건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침묵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서 그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행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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