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에대한 초기 기독교- 교부시대의 가르침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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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1-06-27 21:35 조회4,03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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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불쌍한 이들과 동일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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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었는데, 여기에는 보다 깊은 동기가 있었다.
키프리안은 누미디아 신자들이 야만인들에게 붙잡혀갔을 때
누미디아의 감독들에게 보낸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형제들이 붙잡혀 간 일은 곧 우리 자신이 붙잡혀 간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사로 잡혀간 이들은 곧 하나님의 성전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잡혀간 형제들에게서 그리스도를 뵈어야 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톰은 말하기를
“우리 교회에서는 매일 삼천 명의 배고픈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죄수들에게 옷과 양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병든 사람과 순례자들과 절름발이들과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옷과 양식을 주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여러분의 형제는 어느 교회 건물보다 성스러운 성전”이라고 했다(On Matthew, Homily 50.4)
한편 어거스틴은 가난한 자를 괴롭히는 자들을 엄중하게 힐책했다:
“어리석은 자여, 당신이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먹여 살린다면 당신은 그리스도를 먹여 살리는 것이며,
당신이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수탈할 때는 바로 그리스도를 수탈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Sermon 128.4).
5) 가진 바를 서로 나누라.
기독교철학자 아리스티데스는
주후 125년경에 쓴 글에서 신자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그들은 매우 친절하고 겸손하게 삽니다. 그들에게는 거짓됨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과부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고아들을 박대하지 않습니다.
가진 자들은 갖지 못한 자들에게 풍성하게 나누어줍니다. 객들을 보면 그들을 자기 집에 거하게 하며
마치 그가 자신의 형제인 것처럼 그와 함께 즐깁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가 죽었다면 자신의 능력껏 장례를 치루어 주었습니다.
또 그들 중의 누군가가 메시야의 이름을 위해서 투옥되거나 압제받고 있음을 알았을 때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마련해 주었으며 만일 그가 석방될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구출해 내었습니다.
그들 중에 누군가가 가난하고 궁핍한데도 도울 여력이 없으면 그들을 돕기 위한 금식기도회를 2-3일간 했습니다.”
주후 250년경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약 1,500명의 궁핍한 형제들을 돌본 적이 있었다.
사실 이들은 재물을 아낌없이 베풀었기 때문에 이그나티우스는 “그들은 사랑 안에 살고 있다”라고 말했고,
고린도교회의 감독 디오니시우스도 그들은 “모든 도시의 많은 교회에 원조를 보낸다”라고 말했다.
기독교 초기의 교회 지도자들은 공동체 안에서의 나눔을 강조하였다.
터툴리안도 <변증서>(Apology)에서 신자들의 나눔에 관하여 상술하고 있다:
“각자가 한 달에 한 번씩 약간의 돈이나 그 밖의 것을 가져온다. 아무도 강요를 받지 않는다. 자발적인 헌금이다.
성의껏 내는 신탁기금이라 할 수 있다. 그 돈은 ...빈민들을 먹이고 그들이 죽으면 장사를 치르는 데 쓰이며,
재산과 부모가 없는 소년 소녀들을 위해서와 나이든 노예들과 파선한 선원들을 위해서 쓰인다...
이같은 소위 사랑의 행위는 어떤 사람의 눈에는 우리를 알아보는 표가 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 ‘보라, 저들은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가!’... 그래서 우리는 마음과 혼이 하나가 되며 주저 않고 가진 바를 서로 나눈다.
우리에게는 아내만을 빼놓고는 모든 것이 공동이다” (Apology 39.1.5.-7).
키프리안은 돈 많은 동정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가난한 이들이 여러분이 부유한 사람임을 느끼게 하시오. 곤궁한 사람이 여러분이 부자임을 느끼게 하시오.
여러분의 저택을 하나님께 빌려드리시오. 그리스도께 잡수실 것을 드리시오.”(On the Dress of Virgins 11).
키프리안이 남긴 서신을 보면, 그는 빈민들이 과연 적절한 보조를 받고 있는지 매우 세밀하게 확인하려고 했다.
그는 죄수, 과부, 병자들에게 여러 액수의 돈을 지정하여 할당하기도 했다
한편, 암브로시우스는 교회가 황금을 갖고 있는 것은 그것을 쌓아두기 위함이 아니라
곤궁한 사람들에게 쓰기 위함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성기(聖器)를 부수어 그것을 팔아 포로들의 몸값을 치르는 일도 용납이 된다고 하였다.
나가는 말
초대교회사로부터 ‘잘 정의된’ <기독교 재산론>을 추출해 낼 수는 없다.
종종 교부들의 가르침은 재산에 대해 급진적으로 비판했고, 이 세상 물질에서 초연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교부들이 제시하는 기독교윤리는 오늘의 사회에 일반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규범 체계’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재화)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을 통해 적지 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① 교회(그리스도인)는 부(재화)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을 바르게 전하고, 배우고, 그리고 실천해야 한다.
부(재화)에 대한 관점의 전환 없이는 바른 신앙을 세우기가 어렵다..
② 교회(그리스도인)는 돈의 횡포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드림(giving)과 나눔(sharing)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공동체 내에서의 사랑의 나눔이 강화되어야 한다.
돈이나 다른 어떤 재물을 내어주는 행동은 그 자체가 우리 안에서 무언가를 행한다. 즉 그것은 탐욕을 파괴시킨다.
③ 물질의 가치는 영원과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달려 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면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신앙과 가치관은 돈의 사용을 통해 표현된다.
④ 선교적 관점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는 중요하다.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접근할 길을 찾아보아야 한다.
⑤ 단순한 생활 양식을 개발해야 한다.
필수품과 사치품을 각자의 신앙적 양심으로 분별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피차 절제와 검소의 삶을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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