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 - 노아 방주에 들어간 부정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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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6-05-12 15:15 조회4,2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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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방주에 들어간 부정한 것들
런던 어시장에 청어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이들이 파는 청어는 항상 시들시들하거나 죽은 건데,
그 양반이 파는 것은 늘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북대서양 어장에서 잡아
런던까지 가져오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어떻게 해서 살아있는, 살아 펄펄 뛰는 청어를
가져올 수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그는 간단하게 답한다.
" 메기를 한 마리씩 넣어두지요 "
청어는 메기의 밥이다.
청어 떼 속에 메기 한 마리 들어가 있으면
몇 마리는 당연히 잡아먹히지만, 나머진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 때문에, 그 힘 때문에 런던 어시장까지 죽지 않고 팔팔하게 살아온다는 것.
이미 유명해진 이 얘기, 모르는 사람이 없을게다.
오늘 창세기 7장을 묵상했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짐승들,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씩이었다.
7:2의 원리이다.
창세기 7장 2절에 7대2의 원리가 나온다.
홍수를 예고하신지 이미 120년이 흘렀고,
이 땅의 모든 악한 것들을 진멸하실 때.
하나님은 왜 굳이 부정한 짐승까지,
정결하지 못한 것들까지 방주에 함께 넣으셨을까.
정한 것, 깨끗한 것들만 넣기에도 모자랐을 텐 데..
정결한 것들을 위함이 아닐까.
정결한 것을 더욱 정결케 하시기 위해
부정한 것들을 함께 넣어주신 건 아닐까..
우리의 인격에도 마찬가지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일곱 개쯤 있다면,
악하고 못된 구석도 두어 개쯤은 꼭 있다.
어떨 땐 구름이 어디메뇨 하고 하늘을 날다가
또 어떨 땐 땅이 어디메뇨 하고 곤두박질 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적잖은 실망을 한다.
일상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의 현장에서 언제나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서
당면한 문제들을 한 두어 개쯤은 가지고 있다.
남들은 모르는, 남들에겐 말하기조차 싫은
힘들고 골치 아픈 멍에 한 두어 개 정도는 다들 있다.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민한다.
그것 때문에 힘을 잃고 손발에 맥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은혜임을 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두 손들고 나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새벽 잠을 깨고 기도하게 되며,
그것 때문에 아부지를 소리 높여 부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없었던 믿음이 생긴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인격이 다듬어지고 조금씩 수정되어져간다.
그게 없었다면 얼마든지 교만하고 방자하고
한 순간에
타락하고 말았을 텐 데 말이다.
메기.
청어 떼 속을 휘젓고 다니는 메기다.
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한 청어가 되게 하시려고
애꿎은 메기를 두어 마리 정도 넣어주신 게다.
싱싱하고 아름다운 청어가 되게 하시려고
삶의 현장에 지독한 메기를 살짝 던져두신 게다.
그 메기만 없어지면 행복하리라 생각하지만,
실은
그 메기가 없다면 정말 죽을지 모른다.
타락의 깊은 수렁에 곤두박질 칠지 모른다.
잔뜩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버릴지 모른다.
육신의 생명은 얻을 지 모르지만,
영적인 삶, 그 풍성한 생명은 영영 잃고 말지 모른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메기 정도는 간단히 제거해주시겠지만,
그때까지 메기는 우리의 생명을 위한 도구로 활용이 된다.
7:2의 원리, 그 심오한 뜻을 이제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창세기 7장을 묵상하면서
부정한 것들 암수 둘씩에서 오히려 은혜를 받는다.
부정한 것, 못된 것, 악한 것..
그 메기를
정한 것들과 함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또 한번 혀를 내두른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사랑임을..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알고 도리어 감사하게 된다.
창세기 7장에서 우리의 약함까지도 선하게 활용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다시 한번 힘을 얻는 금욜 아침이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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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규 장로 - 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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