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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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정희 작성일12-09-11 13:35 조회3,4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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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언 십오 륙 년전 초신자 시절 신앙적 멘토였다.
오늘 그분이 무척 생각난다.
소위 말하는 구역예배. 구역장이셨든 권사님의 권면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도망쳐다니다가
미안해서 더는 핑계를 대지못하고 참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헌금시간이 부담되었다. 적게는 서너명, 많게는 예닐곱의 구역원들이
다들 목전에서 헌금을 하는데 혼자 안하기도 뻘쭘하고....
당시 헌금이래야 일,이천원정도였지만 솔직히 믿음도 없었고
구역원들의 잘훈련된 듯한 일사분란함으로 헌금을 하는 모습들이 정서적으로 맞지않았다.
어느날 말했다. 헌금시간이 부담된다고.....
조용한 미소로 답을 하셨다.
다음날 전화가왔다. 함께 저녁을 하고싶다고.
집에서 준비중이니 선약이 없으면 오시라고...
식사내내 화기애애했다. 그렇게 주도를 하셨다.
다과를 하면서 조용히 말씀하시기를 헌금도 예배의 한 부분이라고 하셨다.
다 이해한다고 하셨다. 금액이 부담되는게 아니라 환경, 분위기가 낮설어 그럴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성도의 헌금생활에 대해 교리적으로 설명을 하신 기억이난다.
그러시면서 한가지 안을 내놓으셨다.
헌금은 한다. 다만 동빈아빠가 기쁨으로 참여할수 있을때까지 헌금함을 준비하겠다.
구역원들이 예배전 미리 헌금을 하고 헌금시간에는 헌금기도만을 하겠다.
배려였다. 지혜롭게 초신자에게 다가오셨다.
황권사님의 나를 위한 배려와 그러나 제대로 된 신앙적 양육에 감사와 신뢰가 다가왔다
권사님의 성경책은 총천연색으로 화려(?)했다.
갖가지색의 형광펜으로 구절 구절 밑줄이 그어져있었다.
그만큼 대충 하지 않고 성경을 읽고 공부를 한다는증거였다.
초신자인 내게 그것이 느껴졌고 가슴으로 다가왔다.
조그마한 제조업을 경영하셨는데 당시 IMF로 인해 무척 고전을 겪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늘 한결 같았다. 당시에는 몰랐다.
그러나 그분은 내 마음속에 큰 흔적을 남긴 신앙의 스승이시다.
교회에 잘 정착하게된 결정적 역할은 목사님의 설교보다
황권사님의 향기나는 삶의 모습과 따스한 배려. 그리고 섬김의 도였다.
어느날 다과시간에 날더러 기도를 부탁하셨다.
훗날 말씀하시길 상당한 염려와 부담을 안고 지명했노라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권사님의 기우였다. 나는 그때 이미 이분 같으면
나의 극히 인본적인 시각을 내려놓고 가르침과 인도에 잘 반응하리라....라는
조금은 영적 성숙을 스스로 훈련중일때였다.
그때 한 기도는 나는 기억못한다.
훗날 권사님께서 말씀하시길 진솔한 기도였다고 은혜가 되었다고했다.
이렇게 했단다.
"하나님, 저는 아직 하나님을 잘 알지못합니다. 때문에 기도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구역장님께서 기도를 시키시니 하겠습니다.
제가 믿음이 잘 자라서 다음번 기도할때는 오늘보다 잘할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정말 미안합니다. 다음부터는 좀더 잘 하겠습니다.
아멘. 아,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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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 원철 선교사님은 현재 캄보디아 씨엠립이라는 도시에서 빈민 사역을 하며
특히 우물파기를 통해 많은 가정과 마을에 물로부터 자유함을 주고 있습니다.
황권사님의 신앙적 인격은 좋은 사역자를 길러내는 본보기가 되었는데
우리 교회에도 황권사님 같은 평신도 지도자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갈말에서 퍼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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