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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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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4-06-11 20:14 조회3,2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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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말할 수 없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벧전2;11


늦은 오후였다. 어느 공장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왔다.
급하게 상의할 일이 생겼으니 와 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부랴 부랴 그 공장에 도착했다. 그가 말하기를 지난 주에
모든 근로자들이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한 명은 결핵으로 판명났고,
한 명은 에이즈에 감염되어서 이들을 급하게 조치하는 일에 대해서
상의하고 싶다고 했다. 결핵에 걸린 친구는
그동안 우리 엘림 외국인 선교 교회에 출석했던 터라 잘 알지만,
에이즈에 걸린 친구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난감했다.

일단 그들을 만나 사실을 털어놓고 의논해보기로 했다.
결핵에 걸린 친구를 불러 결핵에 걸린 사실을 말하자 순순히 받아들였고,
다음 주 수요일 쯤에 귀국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는 결핵 뿐 아니라 간이 심하게 손상되어서
장기적인 요양 치료를 해야할 형편임을 부언했다.

에이즈에 걸린 친구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작년 5월에 우리 엘림 외국인선교회 설립 예배드릴 때 바자회를 열었었는데,
그때 참석해서 여러 가지 옷가지들을 챙겨갔다고 했다.
나는 그를 데리고 공장 마당 한쪽 끝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신앙 생활을 해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병명이 무엇이냐고 채근했지만 나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충격받고 상심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말하기 전에
여러 가지 신앙적인 대화를 하면서 위로하고 격려해주고 싶었다.

"형제여!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한 번은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빨리 가거나 늦게 가거나 시간적인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떠나야 한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어차피 나그네 삶이 아닌가.
앞으로 주어진 날들은 하나님을 많이 기쁘게 해드리고,
미소짓게 하고,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넘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날들로 엮어가기를 바라네."

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는 펑펑 울기 시작하면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통곡했다.
"목사님, 제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에이즈에 걸렸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너무 가난하고 불쌍합니다.
제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친구들이 알게되면
그들이 나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저를 멸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외롭고 힘든 날들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는 내가 건네준 손수건을 흠뻑 적실 정도로 통곡했다.
나도 덩달아 그를 끌어안고 울어버렸다.

나는 그가 에이즈에 걸린 사연을 전해듣고는
누가 누구를 향해 돌팔매질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외롭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동거하면서 부부인양 살아가는 모습이 싫고 보기가 역겨웠습니다.

저는 신앙 양심상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외로울 때는 가끔씩 창녀촌을 찾곤했었는데

아마 그때 잘못된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심지어 어떤 이들은 본국에 배우자가 있음에도,
부부처럼 동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즈벡과 러시아인들이 심하다.

에이즈에 걸린 친구는 귀국하기 전에
나로부터 많은 하늘 나라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면서
밤새워 천국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내일 다시 만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마 약속하고
공장 마당을 빠져나왔다.
바깥 공기는 별이 총총한 밤인데도 여름 탓인지 후덥지근했다.


※. 엘림 외국인 선교 교회 류 웅규 목사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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