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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습니다. 내 영혼을 구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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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4-06-23 23:26 조회3,2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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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습니다.



“한국군인들 제발 이라크를 떠나십시오. 여러분의 생명은 귀중합니다.
내 생명도 귀중합니다. 살고 싶습니다.”
인터넷으로 공개된 김선일 형제의 참수되기 전에 처절한 외침이다.
“살고 싶습니다” 이 한마디는 오래 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듯 싶다.
그것도 타국에서 전쟁에 참여한 것도 아닌 민간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은
분명 아닌데 그가 왜 살려달라고 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의 그 애절한 간청을 아무도 도울 수 없었다.
그는 죽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외치신 예수님의 고통하는 말씀이 생각이 났을까?
아님 스데반처럼 하늘을 향한 미소를 띠었을까?
아님 다시 예수님처럼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했을까?
분명 하나님은 그 형제의 생명을
그야 말로 속수무책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게 만드셨다.
온 국민의 기도와 촛불 행렬...
언제나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날 같은 희망과 함께 밤을 지새웠건만....
충격에서 희망 그리고 다시 좌절...
한 사람, 평범하기 그지없는 젊은이의 죽음이 만천하에 보여진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드러내심이다.
분명 처참한 환경에 내 모심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나타내시기 위함이시다.
사람들의 생각을 여지없이 뒤엎으시고 그를 처참하게 죽게 하셨다.
분명 슬프다. 분명 짜증난다. 분명 화가난다. 분명 보복하고 싶다.
왜 하필 민간인인 그가 죽어야만 했는가?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을 엎으시듯 질문의 답도 뒤엎으신다.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 시대에 안주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울린 경종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일 형제를 그곳에 보내셨다.
전혀 상상하지 못할 일이 일어나게 하셨다.
그 일은 비단 선일 형제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 일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제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하셨다.
조심스러워하고 미적거리고 있는 중동선교의 도화선에 불을 당기신 것이다.
이것이 진정 억울함일까? 이것이 진정 분노함이어야 하는가?
아니다. 황송함이다.
순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에 대한 황당함이 아니라 황송함이다.
채 피우지 못한 채 청춘을 이국 땅에
그것도 하나님을 오해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싫어하는 그들에게 필요한
피의 제사를 하나님은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새로운 시도를 하신다.
그를 통해 품으셨던 비젼을 그리고 그 비젼으로 처절하리 만치
강퍅한 바로의 심성을 보여 주신다. 우린 무엇을 보며 무엇을 듣는가?
죽음. 두려움. 좌절 아니다. 분명 형제의 외침에서 들어야 할 것이 있다.

“한국군인은 이라크를 떠나십시오”
그렇다 이라크엔 한국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진정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영혼들을 추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그때에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살고 싶습니다. 내 영혼을 구해 주십시오”
☞. 펀 글



김선일씨를 위한 촛불 기도회를 가지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또 다른 전쟁이나 살인이 아닌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으로
당신을 사용하셨습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버린 저들마저도
사랑으로 인내하며 참으라시며
당신을 모래 벌판으로 이끄셨습니다.

나는 죽기 싫다고 애원하며 흘리는 눈물을 외면하시고
당신을 희생시켜 만민을 살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십자가의 극형으로
무참히 짓밟히셨으나
오히려 그 일을 통하여
인류는 사랑의 도를 배웠던 것과 같이

당신의 죽음은 그 땅을 향한 선교의 씨앗으로
다시 싹트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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