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나누기

내 잔이 넘치나이다. - 맹의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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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0-08-09 14:44 조회4,3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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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내 잔이 넘치나이다.

중공군 포로수용소 병원에서 중공군 환자들을 돌보다 죽은 맹의순 선생.
맹의순은 평양 장태현교회 맹관호 장로의 아들이었다.
부친 맹장로는 평양의 소문난 부자였다. 그의 가족은 6.25전에 서울로 월남하였다.
그는 Y 전문학교 신과에 입학하여 다니다가 목사가 되기 위해 조선신학교로 편입하였다.
그리고 서울역앞 N교회 중등부를 맡아서 봉사하였다.
그러던 중 6.25가 터져 남쪽으로 피난가던 길목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미국 사람들은 최전선 2마일 안에서 집힌 사람은 피난민이건 학생이건 간에 모두 포로로 취급하였다.
이유 없이 그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 중공군 환자들을 돌보어주다
석방을 앞둔 채 쓰러져 죽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포로수용소의 밀알이 되었다.

다음은 그의 도움을 받았던 중공군 포로 환자들이 그의 죽음을 추도하는 글이다.


맹의순 선생 영전에 드립니다.
평화의 왕자. 화평의 사도, 인애의 왕, 우리에게 사랑의 주인이셧던 맹의순 선생이 가시다니.
오늘밤 귀교회에서 우리의 위로자였고 사랑과 존경의 표적이었던 맹선생의 추도예배를 드린다기에
우리 모든 사람의 뜻을 모아 서둘러서 이 글월을 드립니다.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처럼 포로의 옷을 입은 그가 미국 군인 의사들을 도우며 우리의 병동을 찾아오던 초기에
우리는 그를 경멸했고 무시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늘 온화했고 우리를 돕는 그의 행동은 희생 정신으로 언제나 꾸밈없이 여일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대개가 그 무엇인가에 대해서 몹시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적이 따로 없었습니다. 나라(조국, 국가)에 대해서도 특별한 생각을 가질 줄 몰랐습니다.
그저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났고
우리를 전장에 보낸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들을 죽도록 원망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맹선생은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동료 중에 글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일일이 글씨를 가르쳐 가며
선생은 찬미가를 불러 주셨고 나무 십자가를 안고 다니며 그 뜻을 성심껏 전해 주셨습니다.
선생은 새벽 1시, 두시면 늘 병동으로 오셨습니다.
초저녁에 치료와 간병을 맡았던 사람들도 모두 물러가고 나서
중환자들이 심하고 무거운 고통에 짓눌리는 그 시간에 선생은 고통을 다스리는 천사로
우리들 앞에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은 하늘이 보낸 천사였습니다.
깊은 밤 신음 소리가 낙수처럼 쏟아질 때
선생은 인자의 큰 그릇이 되어 우리들의 온갖 고통과 신음을 다 받아 담고
고통과 신음을 들어냄으로써 하나하나 편안히 잠들도록 잠재워 주는 천사로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의 한 손에는 성경 책이,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물통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선생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골고루 만져주고 주물러 주면서 그렇게도 간절하게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기도를 듣고 있으면 기승하던 고통이 스러지고
신음과 함께 목이 타서 잠 못 이루던 육체가 편안한 잠의 품에 안기게 되고는 하였습니다.

겨울이면 따뜻한 물로 여름이면 시원한 물로 우리들의 얼굴을 씻어 주고 손을 닦아 주십니다.
때로는 발도 씻겨 주십니다.
넉넉지 않은 수건을 정성껏 깨끗하게 빨아 가며 한 사람 한 사람 고루 씻어 주십니다.
선생의 손에는 신비한 힘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 손이 얼굴에 닿으면 시원하고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선생이 발을 씻겨 주시면 천상에나 오른 것처럼 평화로워지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염치없이 한 번만 더 한번만 더 그 분의 손으로 씻기는 것을 바랬습니다.

선생은 우리의 더워러진 육체를 구석구석 다닦아 주시면서
그 부드러운 음성으로 나직하게 노래하고는 하셨습니다.
눈을 감고 들으면 그 노래는 천사의 옷깃 스치는 소리 같기도 했고
천사가 안고 있는 하늘나라의 악기가 울리는 것 같은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선생에게서 사랑의 신이 계시다는 것을 보고 깨닫고 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말이 필요없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별로 불편해 할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은
잘 사는 사람 몇몇이 우리들의 기회를 다 빼앗아 저들만 기름지게 살고
우리는 가난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모택동의 깃발 아래 모여 공산주의만 잘 하면 잘 살수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미국이나 구라파에 있는 몇몇 나라들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포로가 되었고 그렇게 되고 보니
쓰레기 같은 낡은 누더기로 무장된 총받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너무나 많은 친구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죽어 갔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우리는 붙잡혀 포로가 되고, 팔 잘린자 다리 잘린자 눈 잃은자
살점 달아난자 동상으로 살이 문드러진 자가 되어
적군의 손으로 치료를 받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사와 끝없는 원망과 증오가 굳어져서
우리의 마음은 깜깜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맹선생이 오셨습니다.
맹선생의 숨결은 우리의 그 두꺼운 껍데기를 녹여 주셨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고 두껍고 어둡던 그 마음의 문을
기도와 찬미와 손을 대어 만져 주던 그 사랑으로 녹게 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따뜻함이 철문이 되어 단단하게 빗장 질러졌던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 주시고 빗장을 풀리게 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랑의 시작이 예수 그 분임을 알았습니다.
십자가는 나의 죄의 모양이고 내 죄로 해서 예수가 그 위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한국 말을 알고 있는 동료가 그분의 말씀을 통역하거나 옮겨 배껴서
우리가 성경을 배우게 했고 찬미가도 부르게 해주었습니다.
맹선생이 지켜 주시는 밤은 어둠이 아니었습니다.
맹선생이 함께하시는 밤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은 우리를 공격하려는 고통을 막아 주시는 기도의 용사였습니다.
우리를 낙담케하는 외로움을 쫒아주시던 파수꾼이었습니다.

우리는 포로의 신세가 되었을 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통탄을 했었습니다.

이 낯선 땅 엉뚱한 곳에서 우리가 왜 포로로 남겨져야 하는 것인지 기가 막힐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맹선생과 함께 지내면서 그분께 가르침을 받은 후에
우리들 몇 사람은 기쁘고 신기한 놀라움에 이따금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합니다.
중공 땅에서 복음이 지워지고 그 담장이 하늘 끝까지 닿을 만큼 높고 두꺼워지자,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들일 몇 사람을 위해서 우리를 이 땅으로 밀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의 총부리를 한국 사람에게 들이대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이 땅에서 복음의 생명수를 받아 마시기 위해서 보내어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누가 무어라 하여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8월 11일 새벽에도 선생은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몇몇 사람은 잠이 들어 있었지만
우리들은 거의 다 선생께서 석방되시리라는 소문을 듣고 있었기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통과 성경책 그리고 번역한 찬송가를 베껴 쓴 종이 한 묶음을 들고 오셨습니다.
깨어 있던 사람들에게 그 종이를 나누어 주시고 종이 말미에 적힌대로
내일은 이 곳을 떠나게 된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침대머리에 꿇어 앉아 그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잠들어 있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중환자들한테 가셔서는 얼굴 씻기고 발 씻기는 일을 다른 날과 다름없이 하셨습니다.
선생은 환자들을 씻겨 주시면서 베껴서 나누어 주신 찬송가를 나직하게 부르셨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 주시기를 바라네

위태한 일 면케 하고 품어 주시기를 바라네 주의 크신 사랑안에 지켜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우리 서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주님 함께 계심 바라네

우리는 그 곡조를 배워가며 조금씩 따라 불렀습니다.
선생님은 한 사람 한 사람 중환자를 씻기시며 울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따라 울었습니다.
전쟁이 나던 해 그 해 초겨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빠지는 일 없이
이 낯설고 말 안 통하는 이국인들의 병실을 찾아주신 분,
이제 우리가 그 분을 잃는다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선생은 석방이 되셔도 이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본다고 하셨지만
우리는 암담했습니다.

마지막 환자를 다 씻기고 일어난 선생은 눈물을 씻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시편23편을 중국어로 더듬더듬 읽어주셨습니다.
선생은 그 성경 말씀을 중국어로 번역해서 베껴 가지고 계셨고
틈틈이 우리에게 읽어 들려 주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 봉독하신 뒤 높은 곳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는 다 그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말씀을 따라 외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 얼굴의 화평함이 우리를 안위해 주었습니다.
그 평화의 미소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선생은 마지막 환자를 씻겨낸 물통과 대야를 들고 일어나셨습니다.
그 순간 어딘지 먼 곳을 향해 높고 높은 그 곳을 바라보며
남겨두고 가시는 우리들을 부탁하시는 듯 높은 곳을 바라보시던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지셨습니다.

미국인 의사들이 달려오고 앰블런스가 와서 선생을 실어 간 뒤 우리는 자책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염치없는 우리들이 선생의 생명을 빼앗았다. 우리가 선생을 돌아가시게 했다.’고.

그 아침이 다 밝아 일과가 시작되었을 때
우리는 선생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신 사랑의 신 예수께 간절하게 기도했으나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선생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맹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어쩌면 맹선생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의 길 위에서만 우리는 맹선생과 함께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어디로 가든지,
맹선생이 주신 그 사랑을 키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그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맹선생과 함께 주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거제리 포로 수용소 중공군 병동의 환자들 일동

                                                                   -  정연희의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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