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나누기

절대로 교회가지마 - 펌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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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정희 작성일12-05-26 13:36 조회3,1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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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관용하고 포용하고 화합하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H.C는 지금도 후회아닌 후회를 하고 있다.

" 그때 내가 그렇게 모질게 말리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

 

  6대 종손이며 60대 후반의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경상도 남자.

문중을 대표하여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제사가 있기때문에 가문이나 친척들의 친목과 유대가 지켜간다고 철저하게 믿고 있는

그의 집안에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자녀들이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없는 일이다.

가장의 권위와 가정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있는 자녀의 이탈을 그는 가혹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맏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입학한 학교가 미션계인 I 여중이어서

친구따라 다니게 된 교회와 교회사람들과의 굳게 이어진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를

단숨에 끊어 보겠다고 구박하고 핍박했던 자신의 몰인정한 처사가 미안하고 후회스럽다고 하였다.

한 때는 강압적으로 바꾸러 했던 딸의 고집이 좀처럼 꺽기지 않자  

그 예쁜 단발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모든게 다 하나님의 섭리이자 계획인 것같다는 말을 했다.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온 뒤 3녀1남의 아이들이 계속 미션 중,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된 것과

동생들이 누나와 언니따라 하나같이 교회에 따라나간 것이 우연으로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에서 성경을 배우고 예배를 드리고 하는 동안 교회에 다니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와 마음이 여디고 착하기만 한 아이들과의 긴 싸움은 20년이상 이어졌다.

호통을 치고 욱박지르며 온 집안을 공포분위기로 몰고가는 아버지로 항상 경직되고 냉기가

흐르는 분위기가 연속될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아버지만 나타나면 피해서 숨어버리곤 했다.

그렇지만 어찌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있겠는가?

오랜 냉전과 전쟁의 결과는 아버지의 핍박을 끝까지 참고 인내한 자식들의 완승으로 끝났다.

다행스럽게 그렇게 완강하게 고집을 꺽지 않던 아버지의 동의를 얻은 세 딸 모두가

믿음이 좋은 청년들을 만나서  그들의 소원대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작년 5월부터  드디어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H.C를 잘 아는 친구들은 그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놀란다고 했다.

기독교인을 그렇게 싫어하고 비난하고 공격하던 꼴통 유교주의자가  세례까지 받고

요즈음에는 기회만 있으면 오히려 전도를 하려고 드니 신기하고 이해할 수없다고 한다.

" 왜 이렇게 좋은 것을 진작하지 않았을까? "

후회된다는 그의 솔직한 심정을 제대로 알아주는 친구는 드물다.

 

  최근기사에 북한의 김정은일당은 이제부터 발각되는 탈북자들은  3족을 죽인다고 공포했다.

옛날 절대왕조에서나 있을 뻔한 얘기들, 왕권에 도전한 역적들은 사돈 8촌까지 3족을 멸해 버리는

가공스런 공포의 형벌로 국가체제를 겨우 유지할 수 있었던 조상들의 모질고 독한 유전인자가

그들에게만 전수된 것일까?

현대사에 있을 수없는 3대세습의 절대권력이 60년이상 계속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수치이다.

 

  그럼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두만강,압록강을 건너는 우리 동포들은 정말 용감한 사람들이다.

탈북자들 중에서 가장 가혹한 처벌을 받는 사람은 중국에 가서 남한의 종교인을 만나고

성경을 소지하여 북한에 다시 돌아오는 동포들이라고 한다.

종교적인 신념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절대로란 말은 절대로 쓰지 말자.

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골수좌익,꼴통보수라고 하여도 그들의 사상이나 주장을

들을 수있고 공감할 수있는 조그마한 여유와 담을 수있는 여분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겠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누가 옳고 정의로운 것인가가 아니고

상대방을 재기불능의 지경까지 몰아서 완전한 K.O승이나 T.K.O승을 거두는 것도 아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의 차이가 나고

추구하는 이상이 틀리고 ,목적하고 목표하는 대상이 다르더라도

서로 관용하고 포용하고 화합하는 것이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시대정신이다.

 

                           관용은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멋내고 행동할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사람이 저마다 고유한 감정과 요구, 

                             희망과 꿈을 지니고있다는 사실을 이해합니다.

                         관용은 또한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나도

                       그를 인내심과 유연성의 미덕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버츄카드로 본 관용이란 말의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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