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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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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5-01-11 21:11 조회3,1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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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준 목사  1914-1981

                                                             "삶에 이르는 병"

 

"사람들은 병을 얻으면 반드시 죽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병을 얻어서  오히려 절망에서 새로운 힘과 삶을 얻었기때문에

 삶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구약학계의 수장 김정준 박사의 글이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에 폐결핵에 걸렸다.

결핵을 지닌 채 그는 학교를 다녔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생활 3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중증 결핵의 판단을 받고 마산결핵요양소에 입소했다.

그는 요양소에 들어가서 자기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것은 간호원들이 자기를 다른 환자들과 구분해서 6급 환자 병동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 병동은 별명이 공동묘지 병실이라고 붙은 병동이었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환자들만 수용하는 병실이었다.

김박사에게 의사들은 3달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쑤근댔다.

더구나 그는 장결핵까지 앓았기 때문에 먹는 것은 다 아래로 쏟아 버렸다.

결핵은 영양을 섭취해야 하는데도...

이 꼴이 하도 딱해서 종군목사 한 사람이 영양 보충하라고 햄 쏘시지를 갖다 준 것을 먹고

위경련이 나서 아사지경에 이르게 된 일도 있다. 부패된 쏘시지였던 것이다.

그는 유서를 써 놓고 죽을 날을 기다렸다.

더구나 죽음을 재촉하는 것은 6급 공동묘지 병동에 있는

자신에 대한 가족들과 의사 간호원의 차가운 시선과 대우였다.

김 목사에게는 이것이 더 미칠 것 같았다.

이것은 생명이 3개월 밖에 안 남았다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다.

이 때 그는 대단한 결심을 했다.

나의 생명을 주심도 하나님이요 가져가심도 하나님이니

의사가 내린 시한인 3개월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한으로 살아야겠다는 강한 결심을 했다.

 

그는 그 때부터 죽기 전까지 남을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서 변기 통을 집어 준다거나 음식을 먹여 준다거나,

물수건을 건네 주는 일 등이었다.

죽어 가는 17세 소녀의 변기를 갖다주고 뒤 본 것도 치워주는 일을 했다.

일어나지도 못하는 소녀가 악을 쓰며 간호원을 불러도 간호원이 오지 않으니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자기 몸도 움직일 힘이 없는데, 죽을 사람이 이 일을 했던 것이다.

이 봉사 외에 하루에 세 번씩 성경을 읽고 해석해 주었다.

의사들은 하루라도 더 살려면 힘을 아끼라고 경고를 했단다.

그러나 김 목사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가장 중태였을 때 삶과 죽음의 의미를 더 잘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그 동안 20명의 장례식을 집도했다.

운명한 자의 시신을 치우고, 거들기를 수십 차례,

그 일을 하면서 이미 사형선고의 3개월 넘어가고 있었다.

그의 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었다.

그는 그 병으로 인해 살게 되었다.

보통 사람의 폐활량이 4000-3500cc인데 그는 1000cc으로 살았다.

그는 퇴원 후 1000cc의 폐활량으로 카나다 유학, 교수, 교환교수 등을 거쳐

번역서 10, 자기가 쓴 책 12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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