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싶은글

전람회의 그림 ...펌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정희 작성일08-02-18 19:18 조회2,771회 댓글0건

본문

전람회의 그림
 
김종배 교수의 「신비한 인체 창조 원리」란 책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만약 사람의 눈이 너무 좋아서 보지 말아야 될 것까지 보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바이러스가 다 보이고, 온갖 세균까지 볼 수 있다면, 어디서 밥 한 그릇, 물 한 잔이라도 마실 수가 있을까. 만약 사람의 귀가 너무 잘 들려서 듣지 말아야 될 것까지 다 들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몸속의 뼈 움직이는 소리, 콩팥에서 소변 걸러내는 소리, 심장에서 펌핑하는 소리, 폐에서 가스 교환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시끄러워서 어디 잠이나 한번 잘 수 있겠는가. 잠은커녕 우리 모두는 신경증 환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세상천지가 너무 시끄러워서 아무 것도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이 꼭 보아야 할 것만 보게 하셨고, 우리의 귀가 꼭 들어야 할 것만 듣게 하셨다. 다른 모든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이 얼마나 오묘한 창조주의 배려인가.”
 
그의 글을 읽으면서 전람회의 그림을 생각한다. 1.5미터 떨어져서 볼 때는 아름다운 그림, 환상적인 전람회장의 그림.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흠도 있고 점도 보일 뿐 아니라 전체적인 짜임새도 잘 보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일정거리 1.5미터를 유지하라지 않던가.
 
사람도 그렇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허점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잡티투성이일 수도 있다. 1.5미터 떨어져서 볼 때는 몰랐던 것, 안보이던 것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빠짐없이 눈에 다 들어온다.
그럴 때 우린 실망한다. 곧잘 고개를 흔들고 만다. 이내 낙담의 한숨을 발하고 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배운다. 아끼는 그림일수록 1.5미터 떨어져서 보라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1.5미터 떨어져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그렇게 자신에게 타이른다. 한계가 많은 사람, 허물투성이인 사람, 그게 우리네의 본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운다. 1.5미터 떨어져서 감상하는 법을 배운다. 잘 안 보이는 허물을 애써 안경을 써가며, 돋보기를 대어가며 확대해서 찾지 않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정말 현저한 허물도 전혀 안 보이는 것처럼 모르는 체 해줄 수 있는 여유도 배운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계가 많고 실수가 많고 허물이 많은, 많을 수밖에 없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그러지 않으실까. 우리의 많고도 많은 허물들, 잡티와 기미 그리고 주근깨까지 애써 모른체 해주시지는 않을까, 일부러 멀찌감치서 봐주시는 건 아닐까, 그래서 많이 용납해주시는 건 아닐까, 그 맛에 우리 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