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싶은글

신발장밑에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정희 작성일08-06-19 16:25 조회3,219회 댓글0건

본문

신발장 밑에서
 
김의현
 
저에게 「예배」는 마음과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Business였습니다. 아주 짭짤한 주 소득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어머니와 모종의 거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워낙 예수님을 뜨겁게 만났기 때문에 마음의 소원은 저와 제 동생도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형제에게 예배는 그야말로 ‘고역’, ‘지루!’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거래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1989년 2월, 중학교 3학년 때의 일로 기억됩니다. 저와 제 동생은 어머니의 강한 손에 이끌려 억지로 전국 중고등부 연합 겨울수련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3박 4일짜리 집회였는데, 1박에 만원씩 받기로 약속하고 끌려갔습니다. 옵션도 있었습니다. 은혜 받으면 2만원입니다. 은혜의 징표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래도 솔직히 가기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 시간이, 시작하는 시간은 있는데 끝나는 시간이 없습니다. 끝나는 시간은 성령님 마음대로랍니다.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새벽 12시고 1시고 Feel받으면 그냥 가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 줄 아십니까?
그런데 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몇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기도원이었는데도 학생들이 너무 많이 와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매우 혼잡하고 시끄러웠습니다.
실은 교회별로 오지 앉으면 등록도 되지 않는데 저와 동생은 어머니의 열심 때문에 등록도 억지로 하게끔 되었습니다. 이른바 「어머니 교회」지요!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그 추운 겨울인데도 예배당 밖에서도 학생들은 예배를 드립니다. 솔직히 제 마음에도 처음에는 오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도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 저기 자리 있다!”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눈에 딱 들어오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다른 곳은 사람이 미어터지는데 이상하게 그곳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제 동생은 그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앉자마자 왜 그곳에는 사람이 없었던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그곳은 몇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이 신발을 놓아두는 신발장 바로 밑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분만 앉아 있으면 머리가 하얗게 됩니다. 먼지가 그렇게 만이 날립니다. 기침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나오는 기침과 함께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오려는 그 순간에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제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를 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그 기도의 내용은 「자리가 있어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는 제 손을 꼭 붙잡고 거절 못 할 진심으로 이렇게 말했던 것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의현아, 엄마는 끝나는 날 데리러 올 테니까, 하나님 만나고 와라. 하나님은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을 만나 주신단다.”
그 순간에 이상하게도 제 마음도 뭉클해졌습니다. 그래서 불평보다는 무릎을 꿇었고 감사의 기도를 했는데, 바로 그곳에서 나의 인생의 전부를 드려도 늘 부족한 하나님! 늘 사랑해도 언제나 2% 부족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찬양팀이 앞에서 불렀던 찬양이 생각납니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 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그 때 뺨에서 흐르던 눈물은, 진정 하나님의 은혜였고, 나를 만나주심의 증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도 앉지 않으려 했던 신발장 밑에서 무릎 꿇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하나님이 찾으셨던 그 마음이 아니었을까?’생각해 봅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 한 교회를 섬기며 목회를 하고 있답니다. 아니 신발장 밑에서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
 
교역자. 서울 목동 도토리교회 인터넷 갈릴리마을 글가족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