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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 1938년 김교신의 성서 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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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0-02-23 21:09 조회3,0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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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 전 일제 치하에서 고민하던 한 지식인의 절절한 글인데,

상황과 맥락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도 동일한 메시지가 울리고 있다는 점이 이채로웠습니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와 혼란 속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한 고민에

명확한 답을 제시해 주신 분이 김교신 선생님의 이 글인 듯 합니다.

 

                     김교신 "십자가의 도"           (성서조선, 1938년 6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고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되느니라. (고린도 전서 1:18)

"십자가의 도라고 하면 세상 불신자들까지도

대개 무슨 의미인줄 짐작하리만큼 널리 유포된 말이니

신자는 물론 누구나 그 뜻을 알 것이며 또한 스스로 아는 줄 자처하는 이가 상당히 많다.

그 의미를 알았다할 뿐 아니라,

그 사상 내용을 동경하며 막연하게나마 자기도 십자가의 도를 걷고자 하는 자도 세상에 적지 않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가 과연 무엇인 줄을 알지 못하고

 세베대의 아들들 같은 야심을 부리는 자도 적지 않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잔이라도 받을 각오가 있다고 뽐낸다.

십자가라는 말은 바울이 특히 사용한 말인데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서 당한 모든 고난의 모양을 통틀어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궤도로 하고 목적지로 하고서 따라가려는 사도의 설교이다.

결코 용이한 일은 아니다.

그 철저하게 겸비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생애는 모든 통상적 인간 사상과는 정반대되는 일이다.

그 십자가의 도를 개개인이 사모한다, 신앙한다 하면서

찬동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현대인들의 일대착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무슨 필요로써 이러한 의견을 교환하고서 서로 놀랐다.

 

갑이 "오늘날 같은 환란의 세대에 처하여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한 가정의 각 개인이 골고루 확고한 각오를 가져야한다.

더욱 주부된 자는 신앙의 연고로 위해가 주인의 일신에 미치는 날에는

일가 노유의 책임을 부담하고서 굳세게 신앙의 길을 지켜 나갈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함에 대하여

 

을의 답은 “살림살이는 힘껏 해 나가려니와 신자의 가정이 각기 그렇게 참담하게 된다면

도리어 그리스도에게 욕되지 않을까, 전도가 막히지 않을까?”고.

이는 십자가의 도와는 바로 백팔십도의 각도로 돌아간 생각이나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신자의 사상 관념을 대언한 고백이며

또 우리 각자의 신앙에 저도 모르게 자리 잡은 신조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고 비통하지 않을 수 없다.

신앙생활이라고 하면 병약하던 사람은 건장해지고, 없이 살던 사람은 부유해지고,

실직했던 사람은 취직되며, 지위 낮던 사람은 승진되어 신임이 두터워지며,

자녀 없던 가정에는 옥동자가 생기며, 불화하던 식구는 화목해지는 법인 줄로 알아서

어떤 전도자는 이런 모든 조건을 전도의 미끼로까지 이용하려 한다.

이렇게 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이라 하나 과연 이것이 십자가의 도일까?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려 하는 사람들에게 명언하시기를,

 "이 말씀을 명백히 하시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거늘,

 예수 돌이키사 제자를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서 가라사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이기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대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자는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그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그 목숨을 바꾸겠느냐.

대개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 있어서 나와 내 도를 부끄러워하는 자는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와 함께 내려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고 하셨고

 

또 십자가의 도를 해명하신 말씀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내 소원이 무엇인고, 불이 이미 붙었다면 좋을 뻔하였도다.

내가 마땅히 받을 세례가 있으니 받을 때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너희는 내가 화평을 세상에 베풀러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다.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니

이 후에는 한 집에 있는 다섯 사람이 분쟁하여 셋이 둘을 치고 둘이 셋을 치되,

아비가 아들을 치며, 아들이 아비를 치고, 어미가 딸을 치며, 딸이 어미를 치고,

시어미가 며느리를 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치리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2:49-53)고.

 

이처럼 명백한 신도 모집 광고문이 있었는데

우리들은 누구에게 속아서 예수를 따르면서평화 단란한 가정 살림을 갈구하고자 하며,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 십자가의 도를 걷고자 하는가?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말씀,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의 겸비, 고난의 전 생애의 원리 그대로의 생활,

이는 중생하지 않은 천연산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원할 수 없는 길이다.

희망해서는 안 되는 길이다. 비극을 전제로 한 길이다.

 인간 본연의 생각과는 본질적으로 거스르는 길이다.

보라, 유대인들이 메시아 즉 그리스도를 대망한 역사가 유구하였으나

그 출생엔 반드시 수도 왕실의 보좌에서 영광이 황홀한 중에 탄강하실 줄 기대했던 것이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객사의 구유에 떨어진 때부터

인간의 도와 십자가의 도와는 하늘과 땅으로 대립되었다.

예수가 택한 제자와 친구, 예수가 용납한 세리와 음녀,

 예수가 질책한 종교가와 학자 등으로부터

하나님의 독생자인 신분에 합당치도 못하게 십자가 위에 참담한 시체를 걸기까지,

아아 어느 것이 우리 의표에 뛰어나지 않은 것이 있던가?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도! 아 과연 알고 따르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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