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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빈모습’이 참으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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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1-04-17 20:22 조회3,7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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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인들을 위한 글이기에 수정이 없이 그대로 옮겼습니다

    짤막한 단편을 읽는 기분으로 잠시 읽어 내려가시면서

    470년 경에 북 아프리카 지금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한 소녀가 56년의 생을 마감하기까지 여정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랫 만에 맑게 씻겨지는 영혼의 시원함을 느꼈읍니다. 아주 아주 좋습니다.

 

남자로 살다 죽은 여자들, 종교신념이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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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 여인들 중에는 남자 수도원에 살거나 은수자의 삶을 택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여인들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출신 카스티씨마의 얘기에 들어가보자.

부잣집에다가 경건한 그리스도교 집안 출신이었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늘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형이었다.

지혜가 넘치는데다 미모까지 겸비한 그녀에 관한 소문은 온 알렉산드리아에 쫙 퍼졌다.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카스티씨마는 분명히 아주 신분 높은 귀족 집안과 혼사를 할 것이고,

평생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 것이라고.

이렇게 예쁜 딸을 두고 떵떵거리면서 멋대로 사윗감을 고를 수 있었던

그녀의 아버지 파푸누티스까지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그녀의 부모도 그런 딸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그녀의 부모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부와 명예를 누리는 귀족의 아들과 혼사를 맺어버렸다.

당시 관습에 따르면 이런 구두 결혼 약속이 공식적인 약혼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코 앞에서 결혼이 다가와 버리자 그녀는 당황했다.

어릴 때부터 그녀는 다른 소망을 늘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소망은 다름 아닌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평생의 반려자로 삼고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버지의 의견과 부딪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버지와 싸울 자신도 없었다.

결국 꽃다운 18살의 처녀 카스티씨마는 집에서 도망쳤다.

머리를 싹 잘라버린 그녀는 남자 복장을 했다.

그녀는 머리 언저리에 머리칼이 없는 중세 수도자의 특이한 대머리로 만들었다.

 

이름도 남자 이름인 알리아스 에머랄드로 바꾸고 한 남자 수도원에 입회했다.

그녀가 이렇게 남장을 하고 남자 수도원에 들어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만약에 그녀가 여자 수녀원에 들어가면

그의 아버지가 당장 그녀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러면 들킬 것이 뻔했고,

다시 집으로 호출되면 강제 결혼을 해야만 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알리아스 에머랄드가 됐다. 그녀의 위장은 문제없이 잘 먹혀 들어갔고,

남자 수도승들과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너무 아름답다 보니 남자 수도승으로 분장했다지만

수도복 사이로 흘러나오는 미모를 모두 감출 수는 없었다.

그녀는 동료들(?)로부터 늘 관심의 대상이 됐다.

동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관찰했다.

아마도 같은 남성이었지만 너무나 꽃미남이었기에

동료들이 그를 통해 여성성을 느꼈던 걸까?

오늘날로 말하면 눈부신 꽃미남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그녀는 그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꿈을 채우기 위해 당도했던 수도원이 그녀에게 그리 만족감을 채워 주진 못했다.

그녀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수도원 부근에 암자를 짓고, 홀로 기도하면서 살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녀는 동료들의 발이 좀 뜸한 곳에 토굴을 지었다.

그녀가 깊게 신뢰하고 있었던 신과 예수에 대한 사랑을 고독 속에서 실천할 요량이었다.

유럽 성녀들의 전기를 보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 했다’, ‘예수는 나의 신랑이다

등의 대목들이 나오는 것처럼 그녀도 그런 삶을 원했던 것 같다.

 

딸이 사라져 버린 것을 알았던 아버지 파푸누티스는 큰 슬픔에 잠겨 그녀를 찾아 나섰다.

알렉산드리아를 다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평소에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아버지는 확신했다.

그녀가 분명 수녀원에 들어 갔을 거라고. 그래서 온 수녀원을 다 뒤지고 다녔다.

그래야만 딸을 구두로 약혼했던 남자와 결혼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그녀가 없자 아버지도 이젠 지쳤다.

심지어 딸을 찾기 위해 한 수도원에 많은 기부까지 하면서 방편기도를 청했다.

 

기도 청탁을 받은 수도승들이 그녀가 나타날 수 있도록 간절히 신께 기도까지 드렸다.

같은 시간에 그녀는 토굴에서 단식하면서 종교적으로 잘 살아 가고 있었다.

신은 수도승들의 기도를 외면하고 이 여인을 숨겨줬단 말인가?

정말 기도란 뭘까? 종교학적인 해석이 좀 필요한 부분이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보아도 딸을 찾지 못하고 있자,

이젠 한 수도원장이 파푸누티스에게 권했다.

차라리 한 경건한 수도승을 소개해줄테니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영적인 위로를 얻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두막집에서 혼자 살아가던 한 수도승을 소개해줬다.

이 수도승이 누구였는가? 바로 그의 딸이었다.

물론 수도원 측에선 그녀가 남장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녀가 이 부자 파푸누티스의 딸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다만 한 수도승과 평신도의 만남을 주선 했을 따름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의 업이 이젠 새로운 고리로 얽혀진 셈이다.

 

딸 카스티씨마는 아버지를 당장 알아봤다. 그러나 끝까지 철저히 숨겼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얼마나 그녀의 모습이 변했으면

아버지가 딸을 못 알아봤을까?

오두막집에서 살았던 그의 모습도 많이 변했던 것이다.

줄곧 단식한 삶에다 머리까지 깎고 남장까지 했으니 변했을 모습에 상상이 간다.

우리가 성형을 조금만 해도 얼굴이 달라 보인다 하지 않는가?

그러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 부녀의 상봉이 정해졌던 결혼의 길로 그녀를 끌고 갈 뻔했던 상황이었다.

 

딸인 줄도 모르고 아버지 파푸누티스는 이 수도승과 영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이 수도승의 종교적인 경건함과 지혜에 늘 탄복을 했고, 많은 감화를 받았다.

하루는 파푸누티스가 수도원장에게까지 고백했다;

내가 이 젊은 수도승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는지 모른다고.

너무 기쁘고 그리고 고맙다고. 꼭 딸을 만난 것 같다고.

이렇게 그는 딸로부터 영적 자양분을 받으면서 딸을 잃은 마음을 위로받았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관계는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됐다.

그녀를 실제로 붙들고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아버지.

딸인줄도 모르고 그녀에게서 영적인 감흥을 받은 것을 보면

어떤 인연이라는 커다란 줄이 우리를 옹매듭으로 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덧 3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남장을 하고서 토굴에서 잘 살수 있게 해 준 신께 늘 감사를 드렸다.

카스티씨마, 아니 에머랄드56살이 됐다. 그녀에게도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다.

이미 백발이 돼버린 아버지 파푸누티스는 죽어가는 수도승을 보기 위해 수도원으로 왔다.

아직도 그는 그 수도승에게 청하기까지 했다.

천국에 가면 천국에 있는 신께 자기가 잃어 버렸던 딸을 찾을 수 있게 좀 빌어 달라고.

그녀가 자기 딸인줄 정말 죽을 때까지 몰랐던 것이다.

 

죽음과 사투하던 에머랄드는 생각을 바꿨다.

죽어가면서까지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기원 후 470년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고백했다.

아버지!”하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당신의 슬픔을 이제 끝내세요. 제가 당신 딸 카스티씨마입니다.”

아버지 파푸누티스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랐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그가 물끄러미 그리고 조용히 마를 대로 마른

딸의 가냘픈 몸을 가슴 아프게 쳐다보고 있는 사이 그녀는 숨을 거뒀다.

 

그녀의 성이 여자였다는 사실은 죽고 나서야 알려졌다.

그녀의 유물은 프랑스로 옮겨져 성 요한나 성당에 안치됐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장님이었던 한 수도승이

그녀의 죽은 몸에 손을 대고서는 눈을 뜨는 기적까지 일어났다.

그녀가 살아 생전에 했던 거짓말,

, 남장여인으로서 수도원에서 살았다던지,

아니면 평생을 아버지를 속였다는 것이 이 모든 것들이

엄밀히 말하면 교회법에 저촉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겐 예외적으로 이런 교회법의 잣대를 대지 않았다.

그녀가 남자 은수자처럼 신을 섬기고 살 방편으로 택했던 남장이었고,

그녀가 남장하고 부모를 속인 이유 또한

신을 섬기기 위함이었기에 무한대의 관용이 따랐다.

 

그녀가 죽고 나자 그녀의 아버지 파푸누티스는

그렇게 딸을 잘 보호해줬던 수도원에 연거푸 감사를 드렸다.

감사의 뜻으로 엄청나게 많았던 재산을 이 수도원에 다 헌납했다.

그는 딸이 살았던 오두막에서 10년을 더 살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분명 딸과 다시 상봉했을 것이다.

 

부와 미모를 다 버리고 18살에 신의 경지를 찾아 떠났던 그녀가 부럽다.

우리는 매사에 놓지 못해 안달인데 1500년 전 어린 그녀는

그렇게 다 놓고 스스로 고독과 가난을 택했다.

그녀의 빈모습이 참으로 부럽다.

 

비교종교학 박사 양태자의 유럽야화<4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3&aid=000380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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